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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향신문 입사기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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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경향신문사 57기 수습기자 모집’ 공고가 뜬 날을 기억합니다. 인턴을 하던 회사로 출근하는 버스 안이었습니다. ‘왜 하필 지금일까’. 탄식했습니다. 선망하던 회사였습니다. 두려웠습니다. 학교 수료를 앞두고 지원하는 첫 언론사 입사 시험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를 쓰기에 정말 적합하지 않은 사례입니다. 제 짧은 경험보다 이 글을 읽으실 분들의 경험이 더 길고 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도 붙을 수 있구나’하는 작은 자신감을 더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조심스레 써보겠습니다.

제가 시험공부를 한 만큼 준비하지 않은 언시생도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경향신문을 1년간 꾸준히 읽었습니다. 그동안 매주 논술, 작문 글을 썼습니다. 시험을 앞두고는 상식 책도 봤습니다. 준비했던 것은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필기도 붙어본 적 없었는데 이후 시험까지 준비했을 리 만무합니다. 첫 지원이니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입사 과정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우당탕탕’이었습니다. 서류 마감 전날, 밤새 자소서를 쓰고도 완성하지 못해 다음 날 오후까지 썼습니다. 서류 제출 마감 2시간 전, 입사 사진을 찍었습니다. 면접에 갈 때는 번듯한 정장 한 벌 갖춰두지 않아 룸메이트의 옷을 빌려 입었습니다. 실무 시험은 ‘코로나19 시대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에 대한 기사 작성을 요구했습니다. 입사 이후 면접관이셨던 선배는 “당연히 준비했을 주제 아니었냐”고 했습니다. 준비한 기사는 없었습니다. 실무 면접은 자기소개서에 대한 질문, 실무 기사에 대한 질문만 준비해 갔습니다. 실무 면접에서 자기소개서, 실무 기사와 관련한 질문은 단 한 문항도 없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매 순간이 위기였습니다.

위기의 순간에서 찾았던 건 결국 작은 경험들이었습니다. “자기소개를 해봐라”라는 질문에 반지하 같은 기자가 되겠다고 답했습니다. 반지하 자취방에 살던 지난 2020년, 지겹게도 비가 왔습니다. 세차게 비가 내리던 날, 화장실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하수도를 타고 물이 꼬록꼬록 내려가는 소리였습니다. 열린 창문을 통해서는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반지하는 저에게 ‘지상과 지하의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회 주류와 소수자의 시선을 고루 갖출 수 있는 기자가 ‘반지하 같은 기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주민방송에서 2년, 맥도날드 알바로 3년을 일했습니다. 작은 영화제에 이주민을 주제로 출품을 한 적도 있고, 방송국에서 영상 인턴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많은 지원자가 실무 시험 기사를 작성할 때 르포 기사를 쓴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상’을 보여줄 르포 기사를 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자신 있던 ‘이주민 차별’을 취재했습니다. 이주 노동자에게만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의무화하던 때였습니다. 기획안 시험에서는 평소 즐겨보던 채널과 공모전에 냈던 아이디어를 섞었습니다. 최종 면접에서는 ‘색깔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보라색을 설명한다면?’이란 질문을 받았습니다. 잠시 고민했습니다. 이내 즐겨 듣던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아이유의 ‘라일락’을 들려주겠다 답했습니다.

‘삶이 개념을 만든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서류 접수에서부터 최종 면접까지, 손쉬운 단계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실무 시험을 앞두고는 문득 이 과정이 버거웠는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골목식당 영상을 보며 갑자기 눈물을 쏟은 적도 있습니다. 분명히 길고, 힘든 시험 과정입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았던 스스로의 입사 과정을 돌이켜보면, 경험에 집착했던 것이 운과 맞닿아 일어난 기적이었다고 느낍니다. 그 과정에서 지원자분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원자만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자신 있게 풀어내 주신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침내 회사에서 만나 여러분과 삶의 개념을 나눌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경향신문 입사 직전 다른 언론사의 최종 면접을 봤습니다. “기자를 꿈꾸게 된 계기가 뭐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받았어요. 당연히 예상 질문 리스트에 있었고, 준비한 대답을 했죠. 그런데 “그런 건 계기가 아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계기를 묻는 거다”라며 면박을 주더군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기자를 꿈꾼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대답할 순 없으니 급하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그리고 떨어졌습니다. 덕분에 지금 경향신문 입사기를 쓰고 있으니, 다행인 일이죠.

목적도 대책도 없는 20대 초반을 보냈습니다. 당시 스스로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실은 “나는 글쓰기가 좋다!” 딱 하나뿐이었어요. 그러다 목적과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이르러 ‘존박의 뮤직하이’(지금은 DJ가 딘딘으로 바뀌었군요)와 같은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글쓰기와 음악만 좋아하면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걸,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뮤직하이’와 ‘볼륨을 높여요’뿐 아니라 ‘시선집중’, ‘뉴스하이킥’ 같은 시사 프로그램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신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0에 수렴했기 때문에 하루 네 시간씩 경향신문을 정독했습니다. 맛보기 스푼으로 여러 신문을 찍어 먹어 보고는 제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신문이었죠.

충동과 치기에서 비롯한 꿈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뮤직뱅크’나 ‘엠 카운트다운’을 만들고 싶어 예능PD로 방향을 틀고는 일 년 반 동안 예능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제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번번이 물을 먹으며 인상적인 피드백들을 들었어요. 한 친구는 제게 “너는 예능을 하기에는 너무 반기업적이다”라고 조언했고, 기획안 스터디에서는 “그런 진지한 이야기를 누가 재미있게 볼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경향신문 정독’은 제 일상에서 상수로 고정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향신문이 내 사상을 만들었다”라는 농담 섞인 진담을 하곤 합니다. 이러한 일상이 2년 정도 쌓인 어느 날 “경향신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예능국이 아니라 경향신문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첫 기자 시험을 경향신문에서 도전했습니다. 물론 떨어졌어요. 당시 저는 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기자에는 어떤 소양이 필요한지에 대한 상식조차 없었으니까요.

경향신문에서 첫 탈락을 겪고 다시 경향신문에 합격하기까지 딱 일 년이 걸렸습니다. 그사이 새로운 스펙을 엄청나게 쌓은 건 아니에요. 이미 제 인생사에 적립된 이야기들을 ‘기자’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시간이었달까요. 저는 대학 때 학내 언론사에서 활동한 경험도 없고, 외국어 실력도 출중하지 못한 데다가 대외활동 경험도 전무합니다. 경향신문 첫 시험에서 탈락한 후에야 뒤늦게 한 언론사에서 6개월 동안 기자 인턴을 했죠.

인턴 생활과 일 년간의 무수한 탈락 경험이 합격의 자양분이 되긴 했지만, 이것이 저의 근본적인 무언가를 바꿔 놓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향신문에 두 번째로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오랜만에 들여다보는데, 헛웃음 나오는 경력(?)들이 잔뜩입니다. ‘블로그에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썼다’ ‘동물원을 찾아다니며 동물원의 의미에 대해 고찰했다’ ‘친구들과 소설을 쓰고 놀았다’. 심지어 이런 것도 있네요. ‘방탄소년단의 일본 인터뷰를 번역해 올리는 트위터 계정을 운영했다’.

소소해 보이는 스펙이 경향신문에서는 어이없게 치부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저는 어떤 일에서든 ‘전형성을 깨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고집이 있는데 이런 신념이 경향신문에서는 통하기에 제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평생 기자를 꿈꿔온 투철한 ‘기자 키드’가 아니어도, 머릿속이 저널리즘과 사회에 대한 고민으로 꽉 차 있지 않더라도, 나름의 ‘기자상’을 정립할 수만 있다면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자기 색깔을 입혀 발전시켜 나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최종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저는 오늘 떨어지더라도 언젠가 경향신문의 기자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덧없어 보이던 언론고시 4년 차, 경향신문은 제 유일한 확신이었습니다.

한창 경향신문 채용 페이지를 들락거리던 시절, 선배들이 쓴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는 읽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먼저 경향신문에 들어가 일 년을 경험했을 생각을 하니 질투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 글이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사랑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지금도 저는 경향신문이 참 좋습니다. 입사를 꿈꾸던 시기의 막연한 동경과는 그 결이 많이 달라졌지만, 어쨌든요.
마지막 학기에 재학 중일 때부터 기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운이 좋게 처음 지원한 회사에서 최종까지 가고, 그 뒤엔 ‘면탈’과 ‘최탈’이 이어졌습니다. 해가 바뀔 때까지 성과가 없자 많이 허탈했지만, 그래도 서류와 필기는 종종 붙는 편이니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연초부터 마가 끼었는지, 면접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서류와 필기에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경향신문 공채는 그렇게 ‘필기 3광탈’로 자기혐오가 극에 달해있을 때 찾아왔습니다. 당시 개인 블로그에 이렇게 썼습니다. “지금 경향이 떴는데 예전과 달리 나는 내가 경향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진짜 못 가도 엄청 아쉬울 것 같진 않다. 경향도 또 떨어진다면 경향을 못 간 아쉬움보단 백수생활을 끝내지 못한 아쉬움과 불안함이 더 클 것 같은 느낌?”. 자소서와 면접에서 그렇게 경향신문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요란을 떨었는데, 사실 제 첫 마음은 이랬다는 걸 이제야 고백합니다. 평소 경향신문은 제가 제일 가고 싶은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너무 간절하지만 지쳤기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 ‘경향신문 입사기’는 좌절과 패배감으로 시작했습니다.

‘한 번만 더 속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서류와 필기 전형을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썼던 자소서들을 모으고 다듬어 3000자 자유 문항 글을 완성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경향신문에 가고 싶은지, 경향신문은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 정리하다 보니 첫 마음과 달리 꼭 붙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꾹 누르기도 했습니다. 필기 전형의 상식 공부는 스팟 스터디를 꾸려 최근 몇 달 치 경향신문의 보도들과 키워드를 정리했습니다. 평소 스터디에서 사용하던 상식 책은 참고만 했습니다. 상식 난이도는 어려운 편이었는데, 지면에서 본 듯한 내용들이 많아 답안을 하나씩 채워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논술 주제는 ‘절차의 공정성과 결과의 공정성’, ‘중부담 중복지와 고부담 고복지’에 대한 내용이었고 저는 전자를 선택해 썼습니다. ‘공정’에 대한 논술 주제가 종종 나와서 많이 써봤던 내용이었는데도 개념이 어려워 주어진 80분 내내 끙끙댔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필기 합격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형식의 완결성보다는 내용 고민을 많이 한 글이었습니다.

필기를 붙고 나니 마음이 벌렁벌렁거렸습니다. 아랑(언론사 취업스터디 온라인커뮤니티)에서 면접 대비 스팟 스터디를 꾸려 며칠 안 남은 시간 동안 매일 모여 모의면접과 토론을 준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중 2명과 동기가 됐는데, 아직도 종로 일대를 지나갈 때면 창문도 없던 그 스터디룸의 탁한 공기를 함께 떠올리곤 합니다. 현장 취재를 하는 실무 전형은 경험이 없어 많이 걱정했는데, 미리 몇 가지 아이템을 생각해갔습니다. 주제로는 ‘코로나19 시대상’과 ‘청년 주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청년 공간이 부족해져 청년들이 스터디카페에 몰린다’는 내용을 취재했습니다. 참신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생각해 최대한 다양한 현장을 가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점심시간이라 통화가 안 되자, 직접 고용노동청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기사 작성 시간이 짧은 편이라 틈틈이 수첩에 기사 얼개를 정리해가며 다녔습니다.

두 번째 실무 면접에선 5명씩 들어가 찬반과 사회자를 나눠 토론하고, 이후 각각 한 명씩 면접을 봅니다. 토론 주제는 조마다 다른데 제 경우 ‘기본소득’이 나왔습니다. 저는 반대 입장을 맡아 평소 정리해놨던 내용을 떠올리며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사회자를 맡게 된다면 자기 의견을 어필하기 어려워 불리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주제와 관련된 현황과 토론자들의 입장을 정리하며 원활히 토론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 같습니다. 면접에선 ‘왜 경향신문이고 기자가 되고 싶은지’, ‘본인의 장점’, ‘기억에 남는 경향신문 콘텐츠’ 등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검정 구두 위로 벚꽃 잎이 나풀나풀 떨어졌습니다. 아름다운 봄날과, 마냥 아름답지만은 못한 제 마음이 겹쳐 설레면서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최종 합격 전화가 오기 직전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 나만 합격 전화를 못 받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절망에 대한 ‘예행연습’을 참 많이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합격 직후엔 그랬던 스스로가 마냥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막을 수 없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들을, 제 최선의 방법대로 건너 지나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과거의 저에게 그 불안을 애써 이기라고 조언해 주고 싶진 않습니다. 그저 정말 정말 수고 많았고, 언젠가는 그 예행연습이 필요 없어지는 시간이 너에게도 꼭 온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입사 전엔 ‘어떻게 해야 붙을지’에 대한 고민을 주로 했습니다. 사실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지’, ‘어떤 기자가 돼야 할지’는 요즘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경향신문은 그런 고민을 맘껏 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며칠 꼬박 고민하고 취재한 기사를 1면에 실어주고, 취재원 보호와 보도 가치 중 어느 것이 우선일지 같이 고민해 주는 선배와 동기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민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겨우 1년 차 기자라 갈피를 못 잡고 허둥지둥할 때가 많습니다. 올해 벚꽃이 떨어지는 계절엔 저와 함께 ‘기자가 무엇인지’ 고민해 주실 분들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제가 쓴 어떤 기사보다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가 여러 번, 그것도 꼼꼼히 읽힐 것을 알아서 부담이 됩니다. 선배들의 입사기를 서류전형 전에 10번, 필기시험 전에 2번, 실무면접 전에 5번, 최종면접 전에 5번 정도 읽었습니다. 사실 별 도움은 안 됐습니다. 선배들은 저와 다른 방법으로 공부했고, 입사 전 저와 다른 수험기간을 보냈으니까요. 제 글도 마찬가지겠지요. 지원자 분들이 마침내 경향신문에 입사한 뒤 저를 만나 놀릴 때 활용되는데 이 글의 효용이 있다고 생각하며 쓰겠습니다.

저는 대학을 수료할 시기에 기자와 시사교양 PD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합격까지는 딱 3년이 걸렸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 보고 읽고 싶은 책 읽는 게 다 필기시험과 면접에 양식이 되는 참 좋은 시험’이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터디를 새로 구하면 스터디원들이 꼭 몇 년쯤 준비했는지 물어보는데, 슬슬 말하기 민망해지는 때가 돼서야 ‘어라? 이렇게 설렁설렁하면 붙기 어려운 시험인 것 같다’라는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중반부터 임하는 태도는 나름 진지해졌지만 그렇다고 <아랑>의 많은 분들처럼 늘 ‘합격권’에 들어 최종면접에 갈 때마다 인사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렇진 않았습니다. 경향신문 직전에 치른 모 언론사의 필기시험에서도 떨어졌습니다.

경향신문 시험을 마지막으로 준비할 때는 좋은 동료가 있었습니다. 스터디원과 서류전형부터 최종면접까지 함께했습니다. 그분 덕분에 요령 부리지 않고, 끝까지 정신 차려가며 시험을 봤습니다. 작년까지만해도 경향신문 시험은 표준화된 편이었습니다. 자기소개서는 ‘자유롭게 3000자’였고, 지금껏 써온 자소서 문항 중 가장 진심인 것을 썼습니다. 3년 동안 가장 많이 한 게 ‘자소서 쓰기’였기 때문에 방망이 깎는 노인의 마음으로 제출했습니다. 상식시험은 상식책보다는 경향신문(혹은 아랑의 상식취합본)을 읽는 게 도움이 됐습니다.

논술시험에서는 뜬금없이 이상한 걸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경향신문 기획 기사에서 논제를 뽑아보는 게(혹은 스터디원이 뽑아준 걸 열심히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토론시험에서는 찬성/반대 중 한쪽이 특히 유리하지 않을 만한 주제, 제 경우 ‘소셜미디어에서 정치적 광고를 허용해야 하는가’가 나왔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여서 당황했습니다. 심층면접은 차분히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면접관으로 들어오신 선배께서 합격을 한 뒤 “너 아주 말아먹었었다”고 하셨습니다. 르포나 기사 기획안 시험은 준비한대로 썼습니다. 평소 스터디 후 집까지 걸어오며 ‘저긴 참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던 곳을 취재했습니다. 기사 기획안은 여러 주제 중 제가 미리 준비한 것을 확장할 수 있는 걸 골라 썼습니다. 최종면접에서는 자소서에 언급한 경험에 대한 질문과 돌발 상황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그냥 겪었다’고 할 수 있을뿐이지 ‘결국 격파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매 전형마다 정말 붙을 줄 몰랐고, ‘그냥 어떻게 하다보니 붙어 있었다’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손에 꼽는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에는 꼭 래퍼 넉살의 노래 ‘팔지 않아’를 들었습니다. “내 영혼을 결코 싸구려에 팔지 않아…” 경향신문을 1년 정도 다녔는데, 아직까지는 영혼을 안 팔았다고 생각합니다. 수습기자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합리적일지 의논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쓰고 싶은 기사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주는 선배들이 곁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쓰고 싶지 않은 기사를 쓴 적도 없습니다.

경향신문 전형을 치르고 있던 지난해 2월, 개인 블로그에 “이제 기자가 못 되는 건 두렵지 않다”는 글을 썼습니다. 꽤 많은 목표들을 게임 스테이지처럼 착착 깨나가던 대학 시절과 달리, 수험 기간은 전형에서 떨어질 때마다 매번 모래성을 다시 쌓는 기분이었습니다. 채용 공고나 합격 발표에 따라 당장 다음주의 일정이 완전히 달라지는 삶을 3년이나 지속하며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돌아보니 완전히 모래성은 아니었다고, 차라리 흐르는 물과 같았다고, 마지막엔 생각했습니다. 기자가 되는 것 외에도 물구나무를 서고, 지속가능한 채식을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관계도, 경험도 쌓였습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신 분이 있다면, 합격 여부에 상관없이 지금의 시간이 그저 지체되고 유예된 시간이 아니라 소리 없이 무언가 쌓이는 시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운이 많이 작용하고, 준비 방법이 다양한 시험입니다. 얼마나 오래 준비했느냐에 따라 고민하는 지점도 다를 터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말씀드리진 못하지만, ‘제가’ 입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실패 경험도 ‘스펙’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소개를 쓰기 전 항상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인생을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우며 살지 않는지라 평가자들이 수많은 지원자 중 저를 기억하게 만드는 ‘한방의’ 스펙도, 일관된 콘셉트도 없었습니다. 입사 후 보니, 천차만별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모였기에 경향신문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섭외를 잘해오는 능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능력, SNS에서 발제 아이템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오는 능력 등은 꼭 공모전 수상, 시험 고득점, 자격증 취득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소소한 경험에서 길러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학생기자로 활동하던 당시 취재 실패 경험담을 예시로 들며 어떤 걸 배웠는지, 거기서 길러진 취재 능력은 무엇인지, 이를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자기소개서에 소상히 적었습니다. 경험이 현장에서 어떤 능력으로 발휘될 수 있을지 잘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논술 시험을 준비할 때, 다른 지원자와는 다른 답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글은 참신하기 전에 구체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글 첨삭을 받을 때 ‘자신만의 관점이 드러나 좋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독특한 관점을 찾으려는 것에만 신경을 써 문단마다 주제가 이리저리 튀었고, 주제와 맞지 않는 이상한 예시를 끌어다 쓰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답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기본을 잊어버린 겁니다. 이는 기사를 쓰는 실무 시험에도 포함됩니다. ‘참신함’에 신경을 쏟아 ‘기본’을 지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경향신문 입사 전형 과정에서는 과감히 회사와 다른 의견을 제시해도 괜찮습니다. 처음 다른 언론사 면접을 봤을 때, 간사하지만, 회사가 좋아할 만한 답을 끼워 맞춰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제 생각이 아니다 보니 논리가 어긋났고, 이 점을 면접관들도 간파했습니다. 경향신문 면접에서만큼은 솔직히 답변했습니다. 경향신문의 2020 신년기획 ‘녹아내리는 노동’에서 다룬 인공지능 빅데이터 구축 아르바이트는 제가 입사 전 해봤던 일이었습니다. 면접 중 “그 일을 실제로 해보니 어땠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기사에서 드러난 모습과 달리 편하고 재밌게 일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 구성원 다수와는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유입돼야 경향신문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평가자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 의견이라면 면접에서 얼마든지 얘기해주셔도 좋습니다.

입사시험을 준비하며 늘었던 건 자괴감과 눈치였습니다. ‘합격’ 두 글자를 너무 듣고 싶은데 다른 지원자들이 무척 훌륭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도, 논술도, 면접용 대답도 나다움을 드러내지 않은 채 꾸며왔습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고요. 취재 실패와 아르바이트 경험담이 입사 전형에서 쓸모가 있었듯이, 언뜻 보기에는 별 게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세울 만한 경험이 지원자분들에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소신을 잃지 말고, 자신만의 경험에서 우러난 자신의 색을 입사 전형 과정에서 잘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여느 언론사 시험이 그렇듯 채용 전형의 전 과정에서 평가자들은 ‘내 생각’을 집요하게 물어본다. 수일의 채용 과정 내내 지원자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풀어내야 한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이 늘 막막했다. 내 생각을 단기간 시험에 대비해 준비한다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합격할 수 있는지 정해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책상에 처박힌 채 골머리를 썩여가며 쥐어짜낸 생각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해 보였고 매력도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책을 덮고 우연히 열람실 밖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실마리가 풀렸다. 지난해 코로나19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되고 초반 한 달간은 서울의 대림동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온 바이러스’라는 까닭에 중국동포 밀집 거주 지역 중 한 곳인 대림동이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와중에 하루는 나도 느닷없이 취재 연습을 한답시고 대림동 중앙 시장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현장 답사 나간다는 구실로 오랜만에 활자 좀 안 보고 머리나 식히자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찾은 곳이었지만 그날 대림동 시장 골목에서 나는 책상에 앉아서는 절대 알지 못했을 것들을 많이 배웠다. 현장의 상인들은 ‘바이러스 매개체’라는 편견의 시선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며, 자신들이 ‘폭력적인 존재’라는 편견은 이전부터 늘 있었고 그 양상이 이제 ‘비위생적인 존재’로 변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대림동의 힘든 상황을 이처럼 언론이 짚어주는 것 자체가 편견을 더 확대 생산하는 측면도 있다고도 지적했다.

처음에 시장에 찾아갈 때 나는 단순히 억울하게 매출이 줄었다고 호소하는 것이 상인 대부분의 반응일 거라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현장의 목소리는 훨씬 풍부하고 다양했다. 누구는 “힘든 상황에서 우리끼리라도 더 구매해 줘야 한다”고 했고 누구는 “우리 이미지니까 우리가 개선해야 한다”고도 했다. 편견이라는 텍스트 안에 짓눌려있던 대림동이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듯했다. 이 같은 경험을 하고 나니 이후 시험장에서 훨씬 생생하고 독창적인 내 생각을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었다.

물론 모든 현장이 그날의 대림동처럼 풍부한 시야를 주는 것은 분명 아니다. 새로울 것 없는 그저 그런 풍경 속에서 내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그렇다고 엄청난 정보나 아이디어를 쥐고 있지도 않은 수많은 사람들과 억지로 마주해야 하는 현장도 다반사다.

하지만 그런 현장에서조차도 여러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질문 거리를 구상하고, 거리의 사람들을 붙잡아 이를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책상에 앉아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생각들을 할 수 있다. 막연히 짐작만 했던 부분을 현장의 목소리로 한 번 더 들으면서 그에 대한 확신을 갖기도 했고,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어떻게 다시 물어봐야 하나 한 번 더 궁리하면서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매일 신문을 열심히 읽고, 주요 이슈를 주제로 완성된 글을 써보고, 이를 동료들과 돌려 읽으며 다듬어가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다. 현장의 확대된 시야로는 보기 힘든 거시적 차원의 통찰 역시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현장에 나가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상식 문제 몇 개를 더 맞춘 걸로는 결코 따라잡기 힘든 생각의 차이가 생긴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언론사 입사 시험은 합격자든 불합격자든 자신이 왜 이런 결과를 받았는지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그날 내가 대림동을 가지 않고 계속 책상에 처박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면 기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 자리에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