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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향신문 입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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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둘로 나뉘어져 있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入) 시험(試)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쪽은 합격자들의 세계다.”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된 공채 제도가 어떻게 새로운 좌절을 낳는지를 분석한 장강명의 책 <당선, 합격, 계급>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는 4년 만에 ‘지망생의 세계’에서 ‘합격자의 세계’로 어렵게 진입했습니다. 공채 제도가 낳는 좌절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압니다. 특히 제가 수년간 겪어온 바 언론사 공채는 단지 시험성적만으로 사람을 선발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른바 ‘언론고시’가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에 가깝기 때문일 겁니다. 언론사 시험은 객관식 정답을 적어내는 상식시험보다는 논술, 면접, 기사쓰기 같은 정해진 답이 없는 시험의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그렇다보니 운이 많이 작용하기도 해서 오래 준비한 사람을 제치고 ‘기자 한 번 해볼까’ 하고 도전한 사람이 바로 합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수험생이 노력으로 커버할 수 없는 요인들(성별, 학력, 나이 등)이 합격 당락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노력 끝에 웬만한 필기시험은 줄줄이 통과했을 정도로 실력은 궤도에 올랐으나 최종면접에서는 수차례 고배를 마셨습니다. 기자 지망생을 위한 모 저널리즘 스쿨의 최종면접에서조차 떨어진 어느 날, 면접관을 찾아가 불합격 이유를 물었습니다. ‘기자가 될 가능성이 큰(어린) 지원자가 유리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30대라는 나이, 여성, 인문계, 긴 취업공백기 등 악조건을 고루 갖춘 ‘취업 약자’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저도 경향신문에 합격했습니다. 54기 취재기자 4명 중 3명은 여성이고, ‘역대 최고령 기수’라는 말이 사내에서 나올 만큼 평균 연령대도 높습니다. 경향신문은 비교적 공정하게 ‘실력’으로 뽑는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장광설을 푼 까닭은, 지금의 채용제도에 혹시라도 좌절하고 있을 당신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 ‘실력’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내가 왜 경향신문 기자가 되어야 하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득해내는 능력입니다. 첫 번째 관문은 자기소개서입니다. 토익 만점 등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글이 안 되면 ‘서탈’합니다. 기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언론사 인턴이든 자원봉사든 뭐든 간에, 설득력 있게 풀어내면 됩니다. 두 번째 관문은 논술입니다. 정해진 시간 및 주제 안에서 문제의식을 가장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사람이 뽑힙니다. 탄탄한 논리구조에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참신한 논거를 덧붙인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마지막 관문은 면접입니다. 최종면접에서 ‘어떤 기사를 쓰고 싶냐’는 질문을 받고 저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약자 이야기만 많이 쓰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압박질문’이 돌아왔습니다. 경향신문이 진보적 성향을 지녔다고 지레짐작해 답변을 짜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관점이 됐든 면접관을 설득해내면 됩니다.

이러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경향신문을 봐야 합니다. 언론고시생의 교과서는 뉴스입니다. 전 경향신문을 비롯한 10대 일간지 및 주요 방송사 뉴스를 적어도 하루 3시간씩 투자해 모니터링했습니다. 시험을 앞두고는 도서관의 뉴스 아카이브에 가서 경향신문 반년치를 정독했습니다. 시사상식을 추려내고, 사설·기획기사 등에서 자주 다뤄진 주제로 논술을 썼습니다. 물론 차별화된 글감을 찾기 위해 책, 영화 등도 부지런히 봤습니다. 최종면접에도 도움이 됩니다. 지원자가 얼마나 경향신문을 관심 있게 지켜봐왔는지를 비중 있게 보기 때문입니다.

한 대학생에게 메일을 받았습니다. “여성, 미혼모, 성소수자, 노숙인등 소수자의 삶을 다양하게 다루셔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는데요, 이러한 주제들을 다루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경향신문 덕분입니다. 입사해보니, 언론사의 성향과 언론자유가 기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타사 기자들이 여성, 성소수자 등에 대해 발제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경향신문 기자가 돼 참 다행입니다.
그냥 질문해도 부담스러워하는 시민들에게 카메라까지 들이대야 한다. 2차 전형에서는 머리와 글로 싸우면 되었다. 3차 실무 평가가 진짜 난관이다. 초상권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입사를 희망하는 이라면 너무 겁먹지 않길 바란다. 정중하게 취재를 요청하면 누구나 흔쾌히 고견을 들려준다. 나는 이를 3차 실무 평가 때 몸소 깨달았다.

‘영상 기자 1호’라는 수식이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언젠가 맞이할 후배를 위해 친절한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를 쓰려 한다. 3차 실무 평가에서 취재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듯 영상 기자는 영상이라는 하나의 소우주를 만들어내야 한다. 전형이 다소 바뀔 수도 있으나 내가 입사시험을 치른 2017년에는 제시어에 맞는 영상의 구성, 촬영, 편집까지 모두 해내야 했다.

제시어 ‘일하는 사람들’을 받아들고 생각을 확장해 ‘그림자 노동’이라는 주제를 잡았다. 편의점 택배,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등 자동화된 기기가 많아지면서 사용자는 인건비가 들지 않지만 소비자는 자기도 모르게 노동을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주제였다. 패스트푸드점이 많은 종로3가에서 카메라를 들기 시작해 편집을 위한 공공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있는 홍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취재했다.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손님, 그리고 점주를 만나 그 자리에서 섭외하고 영상으로 담았다. “뭐하는 거냐”며 쫓겨나기도 했지만 총 10명 이상의 인터뷰를 하였고 이름과 나이, 전화번호까지 받았다.

오후부터는 정해진 장소에서 편집 작업에 돌입해야 했다. 주어진 3시간 안에 명확하게 한 가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핵심적인 멘트를 골라야 하고 분위기를 전달할 스케치 영상도 비교적 잘 촬영한 것으로 가려냈다. 푸티지를 자르고 붙인 데다가 자막을 얹고 최종 추출까지, 영상 제작의 처음부터 끝까지 꼼짝없이 해내고 나면 소위 “당 떨어졌다”고 말할 정도로 지친다. 모든 파일을 제출하고 거리로 빠져나와서야 대단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 있을 토론 형식의 실무 면접과 최종 면접에 대한 정보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기자로서의 자기 확신과 경향신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이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도록 면접관 선배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던 점은 아직도 기억난다.

입사 이후에는 동기들과 함께 ‘마와리(경찰서 순회취재)’를 돌면서 취재 방법을 배운다. 취재와 영상, 사진, 편집 등 여러 직군의 동기들이 한 데 섞여 경향신문 기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취재 요령을 익힌 값진 시간이었다.

‘영상기자 1호’가 된 지 1년이 넘었다. 돌아보니 디지털로만 기획한 영상 뉴스 <김경수의 법률톡톡>이나 지면과 함께 진행한 창간기획 <혐오를 넘어> 등 기억나는 것이 많다. 신문사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기사와 영상은 어떠해야 하는지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지만 뉴미디어 시대를 맞이한 기자라면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영상의 역할이 점점 커지는 대전환의 시기다. 그러나 탄탄한 취재력과 기획력을 갖춘 경향신문 선배들과 함께라면 마냥 두렵지 않다.
취재하러 잠실로 가던 중에 인사팀에서 ‘경향신문 입사기’를 부탁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까짓 것 쓰겠다고 호기롭게 얘기했는데 막상 키보드를 잡으니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합격 전화를 받은 다음날 새벽이 생각난다. 잠들지 못하고 동네를 걷다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먹으며 신문이 오기를 기다렸다. 지면에 인쇄된 내 이름을 보고 싶어 조바심쳤던 몇 십 분이 지금도 선명하다. 말이 잘 정리되지 않지만 짧게나마 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을 졸업했다. 기자라는 직업을 결심한 때는 분명 오래 전이었는데 준비한 것이 없었다. 나는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하지 못했고 어학연수 경험도 없었다. 한 언론사에서 인턴기자 생활을 한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고등학생도 있다는 ‘토익’ 성적이 없었다. 그때부터 살기 위해 사는 삶을 살기 싫어서 뒤늦은 안간힘을 썼다. 나는 정말 염치없는 행운아였다. 모두들 알겠지만 노력은 배신한다. 하지만 내 노력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예비 후배들이 이 글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입사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너무 많은 정보와 방법들이 알려져 있어서 내가 말을 보탠다 한들 별 의미가 없겠다. 다만 기자로서 자신의 관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신문은 단순히 정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판다. 경험이든 학습이든 살면서 자신의 논리 세계를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꼭 필요하다. 입사시험은 임기응변으로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

수습기자로서 오전 4시에 종암경찰서 정문 앞에 섰던 ‘사스마와리’ 첫날이 기억난다. 무서웠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형사과 유리문에 매달려 재물손괴 사건이라도 달라고 애원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수도 없이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후 여러 사건 현장을 비틀거리며 뛰어다녔다. 백수로 살던 조용한 일상에 갑자기 세상 전체가 왁자하게 밀려들어와 나는 허우적거렸다. 그 엉망진창인 시간들을 견디고 사회부 사건팀 경찰기자가 됐다. 이제 형사과장에게 커피 한 잔 얻어먹겠다며 제법 능청스럽게 구는 내 모습에 쓴웃음이 난다.

기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많은 기사들이 내 바이라인을 달고 세상으로 흘러나갔다. 어떤 기사는 타인을 아프게 했다. 그런 기사는 기자에게도 오래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기자는 타인을 아프게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고통은 명확하고 정당해야 한다. 그래서 매번 기사를 송고하기 전에 잘못된 표현이나 잘못된 사실이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야 하는 것이다. 가끔씩 내 기사가 세상에 번져나가는 속도와 힘이 아찔하게 느껴진다.

경향신문에 입사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언론계에 발을 들인 뒤에야 자유로운 취재를 허락하는 회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써야 할 것을 쓸 수 없어 괴로워하는 타사 기자들의 푸념을 들었다. 수습기자 시절 경찰서 흡연실에 앉아 자신을 다독이는 말로 되풀이했던 우리의 사시(社是)를 생각한다. “진실 공정한 보도와 논평을 통해 할 말은 하고 쓸 것은 쓰는 사회 공기로서의 사명을 다한다.” 요즘 어쩐지 기자의 사명이란 말을 민망해하고 우스워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믿는다. 내가 조금이나마 나은 기사를 쓰면 조금이나마 나은 세상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도 조금이나마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어물어물 글을 닫으려 애쓰며 출근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사 입사과정은 흔히 '지하철 2호선과 같다'는 말을 한다. 노선을 순환하다가 운 좋게 멈추는 역(언론사)에 내림(입사함)을 비유한 것이다. '경향신문역'에 내리기 위해서는 경향신문 맞춤형 입사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향신문역'의 문을 열어준 티켓은 경향신문 지면이었다. 입사를 준비하며 매일 경향신문 1면부터 끝면까지 읽었다. 이러한 습관이 입사 2차 전형의 '시사상식'을 통과하는데 도움이 됐다. 기자의 입장이 되어 기사가 어떤 '야마'('기사의 주제'를 뜻하는 일본어)로 작성됐는지 고민하며 기사의 구조도 익힐 수 있었다. 원론적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정이었다.

경향신문이 힘을 실어 보도한 기획기사를 꼼꼼이 챙겨본 것도 도움이 됐다. 2016년 초 입사를 준비할 당시 경향신문은 우리나라 청년 문제를 다각적으로 다룬 '부들부들 청년'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실제 2차 전형의 논술 평가에 청년 관련 논제가 나왔다. '부들부들 청년' 기사를 읽으며 고민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경향신문이 기획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를 우선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입사 공고 전후로 나온 기획 기사를 주제로 다수의 글을 작성해 볼 것을 추천한다.

입사를 준비하며 경향신문이 어떤 언론사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경향신문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작업이었다. 경향신문은 독립언론을 표방한다. 경향신문 70년 역사에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기반은 2000년대 초반 '사원주주회사'로의 전환이었다. 경향신문에는 특정한 사주가 없다. 주식을 갖고 있는 사원들이 경향신문의 주인이다. 경향신문이 정치·자본 권력의 간섭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는 배경이다. '왜 경향신문 기자가 되어야 하는지'란 물음에 답을 구하는 힌트가 됐다.

입사의 1차 관문인 자기소개서 작성부터 마지막 4차 최종면접까지 이러한 고민의 흔적을 녹여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최종면접에 앞서 진행된 3차 실무평가는 '현장 취재-기사 작성-기획안 작성'을 거쳐 '주제토론-실무면접' 순으로 진행됐다. 먼저 4시간여 동안 현장 취재를 한 뒤 기사를 작성했다. 주제 선정에 1시간가량을 소모하는 등 시간 활용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했다. 제한된 시간을 고려해 '거창하지 않은 주제'로 '내실 있는 취재'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 작성에는 '왕도'가 없다. 평소 경향신문 등 지면기사를 필사하며 기사의 구조를 익히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기사 작성으로 끝난 줄 알았던 3차 전형은 계속됐다. 제시된 10개의 주제 가운데 하나를 정해 1시간30분 안에 지면 기획안을 작성하거나, 열 컷짜리 카드뉴스를 만드는 과제가 떨어졌다. '가장 자신 있는 주제'를 정해지면 기획안을 만들었다. 예상치 못해 당황했지만, 해당 주제와 관련해 평소 생각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해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며칠 뒤 4~5명이 한조가 돼 주제 토론을 실시했다. 사회자와 토론자 역할을 나누고, 10분 안에 토론 준비를 마무리해야 했다. 평소 다방면의 시사 이슈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 뒤 개인별로 진행된 실무면접은 앞서 작성한 기사와 기획안, 토론 내용 등을 이야기한 자리였다. 그 동안의 실무전형 내용을 되돌아보며 차분하게 답변하고자 노력했다.

최종면접을 거쳐 경향신문에 합격했지만 곧바로 정식기자가 된 건 아니었다. 6개월 동안 수습기자로서 '기자가 되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사스마와리' '하리꼬미' 등 생소한 일본어로 표현되는 일반 언론사의 혹독한 수습교육과는 달랐다. 1주일 가운데 6일을 경찰서에서 매일 2~3시간 잠자며 취재하는 비인간적인 '하리꼬미'를 없앴다. 대신 국제부·정치부·전국사회부·편집부·사진부·모바일팀 등의 부서를 돌며 다채로운 실무교육을 받았다.

국내 언론사 가운데 최초로 경향신문이 수습교육의 '혁신'을 이뤄낸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언론사 인턴 경력 등 '화려한 스펙'을 갖추지 못했지만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기자가 되겠다.'를 넘어 '경향신문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유효했던 것 같다. 경향신문의 사시처럼 '진실을 읽는' 기자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경향신문의 훌륭한 선배들, 앞으로 들어올 뛰어난 경향신문 후배들과 함께 좋은 기자로 성장해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문사? 너 기자해?”

“아니, 디자이너”

“그래...? 그럼 거기서 뭐해?”


호기심이 가득한 친구의 두 눈앞에서 정확히 대답을 못한 채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어.’ 하고 얼버무리던 적이 있었다. 입사 직후 커다란 모니터 앞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시절, 편집국 한 편에서 나의 자리를 찾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다. 물론, 이 ‘어색함’이 함께 입사한 모든 동기들의 경험은 아니었다. 지난해 경향신문은 국내 언론사 최초로 개발 직군을 공채로 채용했고, 언론을 전공해 개발을 배운 나는 이례적인 채용의 수혜자가 되었다. 그렇게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비기자' 명찰을 달고 편집국의 군식솔이 되어 출근 도장을 찍게 된 셈이다.

‘이례적’이었기에 모든 것이 초행길이었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떠밀려 전통매체는 이제 막 낯선 토양 위로 발을 디딘 참이었다. 지난 10개월은, 선배들과 함께 그 위를 두드려가며 조금씩 디지털 저널리즘의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이제 겨우 시작인만큼, 그 시간과 노력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 두려한다. 다만 객관적인 성공과 실패 관계없이 스스로는 감사한다. 초행길 위에서 실수도 어려움도 많았지만, 좌절보단 배움이 컸던 탓이다.

그래서 이제는 '뭘 하냐'는 질문에 그럭저럭 대답한다. "저는 경향신문 디지털 뉴스 시각화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가공하고 그래픽을 더하고, 지면 위 글이 아닌 또 다른 뉴스의 형태를 찾아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선배와 함께 인터랙티브 기사를 기획하고, 영상을 제작들고, 심지어 게임도 만들었다. 도전에 인색하지 않고 막내가 엉뚱한 제안을 해도 “그래 해봐라” 며 너그럽게 용인해주는 편집국의 방목형 환경 속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고, 수습에겐 과분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너도 저널리스트라는 생각을 가져라.’ 입사 초기 오며 가며 선배들께서 어깨를 두드리며 이 말을 많이 해주었다. 언력이라도 있었던 걸까. ‘개발자’라는 두 번째 꿈을 찾아 들어온 편집국의 한 구석에서 나는 오래전 접어 두었던 저널리즘의 꿈도 마주할 수 있었다. ‘최순실게이트’ 여섯 글자에 며칠을 공들인 그래픽이 공유되고, 외부 모임에서 “그 영상 경향신문거에요? 너무 잘 봤어요!” 한 마디 들을 때, ‘내가 이 길 위에 있어서 다행이다’고 생각한다.

1년의 소회만을 적어 놓은 것이 걸리지만, 이것이 차후 입사를 희망하는 자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디지털 미디어 기업으로 저변을 넓혀야 했던 전통매체의 필요와 저널리즘도 디지털도 놓을 수 없었던 스스로가 그 자리에 있어서 운이 좋게 경향신문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오롯이 나만의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작년에 열렸던 한 언론 컨퍼런스의 이름을 빌려, “미디어는 실험 중이고 실험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