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미리 만나보세요

미리보는 경향인 본문

  1. HOME
  2. 미리보는 경향人
  3.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

FAQ 게시판

전체문의 조회결과
이름 내용
제가 쓴 어떤 기사보다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가 여러 번, 그것도 꼼꼼히 읽힐 것을 알아서 부담이 됩니다. 선배들의 입사기를 서류전형 전에 10번, 필기시험 전에 2번, 실무면접 전에 5번, 최종면접 전에 5번 정도 읽었습니다. 사실 별 도움은 안 됐습니다. 선배들은 저와 다른 방법으로 공부했고, 입사 전 저와 다른 수험기간을 보냈으니까요. 제 글도 마찬가지겠지요. 지원자 분들이 마침내 경향신문에 입사한 뒤 저를 만나 놀릴 때 활용되는데 이 글의 효용이 있다고 생각하며 쓰겠습니다.

저는 대학을 수료할 시기에 기자와 시사교양 PD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합격까지는 딱 3년이 걸렸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 보고 읽고 싶은 책 읽는 게 다 필기시험과 면접에 양식이 되는 참 좋은 시험’이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터디를 새로 구하면 스터디원들이 꼭 몇 년쯤 준비했는지 물어보는데, 슬슬 말하기 민망해지는 때가 돼서야 ‘어라? 이렇게 설렁설렁하면 붙기 어려운 시험인 것 같다’라는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중반부터 임하는 태도는 나름 진지해졌지만 그렇다고 <아랑>의 많은 분들처럼 늘 ‘합격권’에 들어 최종면접에 갈 때마다 인사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렇진 않았습니다. 경향신문 직전에 치른 모 언론사의 필기시험에서도 떨어졌습니다.

경향신문 시험을 마지막으로 준비할 때는 좋은 동료가 있었습니다. 스터디원과 서류전형부터 최종면접까지 함께했습니다. 그분 덕분에 요령 부리지 않고, 끝까지 정신 차려가며 시험을 봤습니다. 작년까지만해도 경향신문 시험은 표준화된 편이었습니다. 자기소개서는 ‘자유롭게 3000자’였고, 지금껏 써온 자소서 문항 중 가장 진심인 것을 썼습니다. 3년 동안 가장 많이 한 게 ‘자소서 쓰기’였기 때문에 방망이 깎는 노인의 마음으로 제출했습니다. 상식시험은 상식책보다는 경향신문(혹은 아랑의 상식취합본)을 읽는 게 도움이 됐습니다.

논술시험에서는 뜬금없이 이상한 걸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경향신문 기획 기사에서 논제를 뽑아보는 게(혹은 스터디원이 뽑아준 걸 열심히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토론시험에서는 찬성/반대 중 한쪽이 특히 유리하지 않을 만한 주제, 제 경우 ‘소셜미디어에서 정치적 광고를 허용해야 하는가’가 나왔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여서 당황했습니다. 심층면접은 차분히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면접관으로 들어오신 선배께서 합격을 한 뒤 “너 아주 말아먹었었다”고 하셨습니다. 르포나 기사 기획안 시험은 준비한대로 썼습니다. 평소 스터디 후 집까지 걸어오며 ‘저긴 참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던 곳을 취재했습니다. 기사 기획안은 여러 주제 중 제가 미리 준비한 것을 확장할 수 있는 걸 골라 썼습니다. 최종면접에서는 자소서에 언급한 경험에 대한 질문과 돌발 상황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그냥 겪었다’고 할 수 있을뿐이지 ‘결국 격파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매 전형마다 정말 붙을 줄 몰랐고, ‘그냥 어떻게 하다보니 붙어 있었다’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손에 꼽는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에는 꼭 래퍼 넉살의 노래 ‘팔지 않아’를 들었습니다. “내 영혼을 결코 싸구려에 팔지 않아…” 경향신문을 1년 정도 다녔는데, 아직까지는 영혼을 안 팔았다고 생각합니다. 수습기자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합리적일지 의논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쓰고 싶은 기사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주는 선배들이 곁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쓰고 싶지 않은 기사를 쓴 적도 없습니다.

경향신문 전형을 치르고 있던 지난해 2월, 개인 블로그에 “이제 기자가 못 되는 건 두렵지 않다”는 글을 썼습니다. 꽤 많은 목표들을 게임 스테이지처럼 착착 깨나가던 대학 시절과 달리, 수험 기간은 전형에서 떨어질 때마다 매번 모래성을 다시 쌓는 기분이었습니다. 채용 공고나 합격 발표에 따라 당장 다음주의 일정이 완전히 달라지는 삶을 3년이나 지속하며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돌아보니 완전히 모래성은 아니었다고, 차라리 흐르는 물과 같았다고, 마지막엔 생각했습니다. 기자가 되는 것 외에도 물구나무를 서고, 지속가능한 채식을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관계도, 경험도 쌓였습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보내신 분이 있다면, 합격 여부에 상관없이 지금의 시간이 그저 지체되고 유예된 시간이 아니라 소리 없이 무언가 쌓이는 시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운이 많이 작용하고, 준비 방법이 다양한 시험입니다. 얼마나 오래 준비했느냐에 따라 고민하는 지점도 다를 터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말씀드리진 못하지만, ‘제가’ 입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실패 경험도 ‘스펙’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소개를 쓰기 전 항상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인생을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우며 살지 않는지라 평가자들이 수많은 지원자 중 저를 기억하게 만드는 ‘한방의’ 스펙도, 일관된 콘셉트도 없었습니다. 입사 후 보니, 천차만별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모였기에 경향신문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섭외를 잘해오는 능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능력, SNS에서 발제 아이템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오는 능력 등은 꼭 공모전 수상, 시험 고득점, 자격증 취득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소소한 경험에서 길러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학생기자로 활동하던 당시 취재 실패 경험담을 예시로 들며 어떤 걸 배웠는지, 거기서 길러진 취재 능력은 무엇인지, 이를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자기소개서에 소상히 적었습니다. 경험이 현장에서 어떤 능력으로 발휘될 수 있을지 잘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논술 시험을 준비할 때, 다른 지원자와는 다른 답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글은 참신하기 전에 구체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글 첨삭을 받을 때 ‘자신만의 관점이 드러나 좋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독특한 관점을 찾으려는 것에만 신경을 써 문단마다 주제가 이리저리 튀었고, 주제와 맞지 않는 이상한 예시를 끌어다 쓰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답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기본을 잊어버린 겁니다. 이는 기사를 쓰는 실무 시험에도 포함됩니다. ‘참신함’에 신경을 쏟아 ‘기본’을 지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경향신문 입사 전형 과정에서는 과감히 회사와 다른 의견을 제시해도 괜찮습니다. 처음 다른 언론사 면접을 봤을 때, 간사하지만, 회사가 좋아할 만한 답을 끼워 맞춰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제 생각이 아니다 보니 논리가 어긋났고, 이 점을 면접관들도 간파했습니다. 경향신문 면접에서만큼은 솔직히 답변했습니다. 경향신문의 2020 신년기획 ‘녹아내리는 노동’에서 다룬 인공지능 빅데이터 구축 아르바이트는 제가 입사 전 해봤던 일이었습니다. 면접 중 “그 일을 실제로 해보니 어땠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기사에서 드러난 모습과 달리 편하고 재밌게 일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 구성원 다수와는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유입돼야 경향신문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평가자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 의견이라면 면접에서 얼마든지 얘기해주셔도 좋습니다.

입사시험을 준비하며 늘었던 건 자괴감과 눈치였습니다. ‘합격’ 두 글자를 너무 듣고 싶은데 다른 지원자들이 무척 훌륭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도, 논술도, 면접용 대답도 나다움을 드러내지 않은 채 꾸며왔습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고요. 취재 실패와 아르바이트 경험담이 입사 전형에서 쓸모가 있었듯이, 언뜻 보기에는 별 게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세울 만한 경험이 지원자분들에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소신을 잃지 말고, 자신만의 경험에서 우러난 자신의 색을 입사 전형 과정에서 잘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여느 언론사 시험이 그렇듯 채용 전형의 전 과정에서 평가자들은 ‘내 생각’을 집요하게 물어본다. 수일의 채용 과정 내내 지원자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풀어내야 한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이 늘 막막했다. 내 생각을 단기간 시험에 대비해 준비한다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합격할 수 있는지 정해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책상에 처박힌 채 골머리를 썩여가며 쥐어짜낸 생각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해 보였고 매력도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책을 덮고 우연히 열람실 밖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실마리가 풀렸다. 지난해 코로나19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되고 초반 한 달간은 서울의 대림동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온 바이러스’라는 까닭에 중국동포 밀집 거주 지역 중 한 곳인 대림동이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와중에 하루는 나도 느닷없이 취재 연습을 한답시고 대림동 중앙 시장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현장 답사 나간다는 구실로 오랜만에 활자 좀 안 보고 머리나 식히자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찾은 곳이었지만 그날 대림동 시장 골목에서 나는 책상에 앉아서는 절대 알지 못했을 것들을 많이 배웠다. 현장의 상인들은 ‘바이러스 매개체’라는 편견의 시선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며, 자신들이 ‘폭력적인 존재’라는 편견은 이전부터 늘 있었고 그 양상이 이제 ‘비위생적인 존재’로 변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대림동의 힘든 상황을 이처럼 언론이 짚어주는 것 자체가 편견을 더 확대 생산하는 측면도 있다고도 지적했다.

처음에 시장에 찾아갈 때 나는 단순히 억울하게 매출이 줄었다고 호소하는 것이 상인 대부분의 반응일 거라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현장의 목소리는 훨씬 풍부하고 다양했다. 누구는 “힘든 상황에서 우리끼리라도 더 구매해 줘야 한다”고 했고 누구는 “우리 이미지니까 우리가 개선해야 한다”고도 했다. 편견이라는 텍스트 안에 짓눌려있던 대림동이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듯했다. 이 같은 경험을 하고 나니 이후 시험장에서 훨씬 생생하고 독창적인 내 생각을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었다.

물론 모든 현장이 그날의 대림동처럼 풍부한 시야를 주는 것은 분명 아니다. 새로울 것 없는 그저 그런 풍경 속에서 내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그렇다고 엄청난 정보나 아이디어를 쥐고 있지도 않은 수많은 사람들과 억지로 마주해야 하는 현장도 다반사다.

하지만 그런 현장에서조차도 여러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질문 거리를 구상하고, 거리의 사람들을 붙잡아 이를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책상에 앉아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생각들을 할 수 있다. 막연히 짐작만 했던 부분을 현장의 목소리로 한 번 더 들으면서 그에 대한 확신을 갖기도 했고,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어떻게 다시 물어봐야 하나 한 번 더 궁리하면서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매일 신문을 열심히 읽고, 주요 이슈를 주제로 완성된 글을 써보고, 이를 동료들과 돌려 읽으며 다듬어가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다. 현장의 확대된 시야로는 보기 힘든 거시적 차원의 통찰 역시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현장에 나가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상식 문제 몇 개를 더 맞춘 걸로는 결코 따라잡기 힘든 생각의 차이가 생긴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언론사 입사 시험은 합격자든 불합격자든 자신이 왜 이런 결과를 받았는지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그날 내가 대림동을 가지 않고 계속 책상에 처박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면 기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 자리에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거다.
취재 중 인사팀에서 ‘경향신문 입사기’를 써달라고 전화를 해왔다. 입사 전 선배들이 써둔 글을 읽었으니 언젠가 나도 써야 할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두려웠다. 한 번뿐인 입사의 순간보다 그 이전의 숱한 좌절이 더 크게 떠올랐다. 굳이 써야 한다면 ‘입사 실패기’여야 할 것 같았다.

언론사 시험 준비를 시작한 뒤 꼬박 4년이 걸려 경향신문에 들어왔다. PD와 기자 사이 어느 길을 갈지 한참을 번민했다. 지역의 한 지상파 PD로 잠시 녹을 먹다, 기자가 되겠다며 퇴사했다. 막바로 원하는 회사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경향신문을 비롯해 꿈꾸듯 바라본 몇몇 언론은 필기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 생각 않던 회사에도 수차례 지원했다. 한 경제지에서 수습 생활을 했지만 또 그만뒀다. 직업을 가진 시간보다 밖에서 떤 세월이 훨씬 길었다.

경향신문에 입사한 뒤 시험을 준비하며 밑줄그은 종이와 수험표들을 달력 세듯 헤아려봤다. 필기 탈락보다 면접에서 떨어진 날이 더욱 많았다. 총 27번의 ‘면탈’이었다. ‘차마 여기는’ 하며 면접장에 가지 않은 때도 있었다. 지금도 내가 지원했던 회사들이 왜 나를 거절했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뒤집어, 내가 거친 두 회사가 왜 나를 뽑아주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입사에 관한 한 내겐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다만 한 가지, ‘관점’에 대해 말하고 싶다. 수습 생활 중 숱하게 많은 집회 현장에 갔다. 일부는 기사로 다뤘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많았다. 부당해고 당한 어떤 노동자는 10년을 넘게 회사와 정부에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등 문제는 수년, 수십년 풀리지 않았다. 이들이 기사화되지 않은 건 예전부터 있던, 새롭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언론은 시의성을 따져 보도가치를 셈한다. 그게 늘 내게는 딜레마였다. 오랜 투쟁 현장에 새로운 사실이 없다는 말은 뒤집어 보면 문제가 한 걸음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루 내 기사가 밀리면 누군가의 처지는 하루 더 나빠질 수 있었다.

해법을 찾다 얼마 전 선배들이 쓴 기사를 봤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는 제목의 기획기사였다. 사람은 늘 죽었는데 대개 잊히거나 단신 기사로 처리됐다. 선배들은 산재 사망한 1200명의 명단을 1면에 실었다. 그러자 의미가 달라졌다. 사람을 사지로 모는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김용균은 수다한 사망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고 전태일의 연장선에 있었다. 지난달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사회 기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부산경마공원이 창설한 2005년 이래 7번째 자살사망자였다. 우리가 좇는 새로운 사실이란 오래된 문제의 반복인 경우가 많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새 의미를 낳는 큰 기사가 될 수도, 늘 있는 일이라며 보도의 우선순위서 밀려날 수도 있다.

“‘벽을 미는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에는 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말했다. 움직이지 않는 장애물과 기약없이 싸우는 이들을 묘사한 말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어떻게’를 고민했다. 간지럽지만, 경향신문에 들어와서 참 행운이라 생각했다. 쓰고 싶은 내용을 기사로 다룰 수 없어 괴로워하는 타사의 기자들을 보았다. 어떤 소재를 다뤄야 한단 직관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헤매는 이의 푸념도 들었다. 지금까지 이 회사는 무언가를 취재하겠다 나서는 내 의지를 깎아내린 적 없다. 내 능력이 부족해 좌절할 때는 있었지만, 그때도 늘 주변의 선배·동료들이 함께 고민해줬다.

이것이 ‘왜 멀쩡한 직장을 그만 두느냐’며 묻던 주변인들과 ‘왜 꼭 이 일이어야만 할까’라며 자책하던 스스로에게 주는 답이다. 적어도 내게, ‘이 일’을 하기에는 ‘이 직장’이 최선이다. 수많은 밤을 좌절과 자책으로 새우며 업의 본질을 고민한 지원자가 많을 줄로 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지만, 함께 머리 맞댈 동료로 당신을 기다린다.
1년 전 이맘 때쯤 경향신문 채용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렸다.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를 보며 ‘이렇게 준비했구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메모하고 참고했다. 기자 24시를 보면서 ‘입사하면 저렇게 사는구나’ 두려움과 부러움이 동시에 들었다. 매 공채 단계를 거칠 때마다 이곳에 들어와 이미 수없이 본, 선배들의 입사기를 정독하며 마음을 다졌다. 입사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막막함이 들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1년 전의 나처럼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지원자들이 어떤 심정인지,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내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입사 1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친구들은 묻는다. “왜 기자가 되고 싶었니”. 자기소개서를 쓸 때부터 최종 면접까지, 입사 후에도 따라붙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한결같이 답했다. “내 편견을 깨고 싶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갖고 있는 선입견을 차차 없애나가고 싶었다. 동기들의 대답은 나와는 또 달랐다.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다양하다. ‘이걸 계기로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면 높은 점수를 받겠지’라는 건 없다. 아주 사소한 계기더라도 솔직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으면 된다.

입사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실무평가였다. 늘 도서관에 가 신문을 읽고 스터디만 했지, 현장에서 뛰어본 경험은 별로 없었다. 언론사 공채 시험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전 한 언론사에서 인턴을 한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오래 돼 주제에 맞는 아이템을 잘 찾을 수 있을지, 기사를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사람들한테 거절당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내 질문을 무시하지 않을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졌다. 실무평가 당일, 한 가지는 꼭 지키려고 했다. ‘현장감’. 시험을 준비하면서 수없이 신문에서 봤던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현장에 가야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중심으로 기사를 적으려고 노력했다. 이게 지원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시간에 내가 최대한 열심히 취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내가 선택한 현장이 잘 드러나야 한다고 여겼다. 이 선택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입사기를 쓰고 있는 걸 보면 적어도 무시할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수습 교육도 많이 바뀌었다. ‘하리꼬미’는 없어진 지 몇 년 째다. ‘사스마와리’ 기간도 줄어들었다. 나와 동기들은 경찰서를 돌면서도 각종 기자회견, 사고 현장에 보내졌다. 경찰서 이외 현장들을 돌며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취재원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현장에서 어떤 걸 체크해야 하는지, 기사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을 배웠다. 수습 말미에는 아이템을 발굴해 취재도 했다. 사실관계가 복잡해 선배와 퇴근 시간을 넘기면서 기사 개요를 정리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많은 기사들이 내 바이라인을 달고 나갔다.

지금도 같은 이유로 기자를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당사자를 만나보면 달랐다.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며 새로 배우는 것. 이게 기자라는 직업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향신문’ 기자가 되면 이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각자의 이유를 지닌 채 경향신문 기자로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