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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향신문 입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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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중 인사팀에서 ‘경향신문 입사기’를 써달라고 전화를 해왔다. 입사 전 선배들이 써둔 글을 읽었으니 언젠가 나도 써야 할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두려웠다. 한 번뿐인 입사의 순간보다 그 이전의 숱한 좌절이 더 크게 떠올랐다. 굳이 써야 한다면 ‘입사 실패기’여야 할 것 같았다.

언론사 시험 준비를 시작한 뒤 꼬박 4년이 걸려 경향신문에 들어왔다. PD와 기자 사이 어느 길을 갈지 한참을 번민했다. 지역의 한 지상파 PD로 잠시 녹을 먹다, 기자가 되겠다며 퇴사했다. 막바로 원하는 회사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경향신문을 비롯해 꿈꾸듯 바라본 몇몇 언론은 필기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 생각 않던 회사에도 수차례 지원했다. 한 경제지에서 수습 생활을 했지만 또 그만뒀다. 직업을 가진 시간보다 밖에서 떤 세월이 훨씬 길었다.

경향신문에 입사한 뒤 시험을 준비하며 밑줄그은 종이와 수험표들을 달력 세듯 헤아려봤다. 필기 탈락보다 면접에서 떨어진 날이 더욱 많았다. 총 27번의 ‘면탈’이었다. ‘차마 여기는’ 하며 면접장에 가지 않은 때도 있었다. 지금도 내가 지원했던 회사들이 왜 나를 거절했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뒤집어, 내가 거친 두 회사가 왜 나를 뽑아주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입사에 관한 한 내겐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다만 한 가지, ‘관점’에 대해 말하고 싶다. 수습 생활 중 숱하게 많은 집회 현장에 갔다. 일부는 기사로 다뤘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많았다. 부당해고 당한 어떤 노동자는 10년을 넘게 회사와 정부에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등 문제는 수년, 수십년 풀리지 않았다. 이들이 기사화되지 않은 건 예전부터 있던, 새롭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언론은 시의성을 따져 보도가치를 셈한다. 그게 늘 내게는 딜레마였다. 오랜 투쟁 현장에 새로운 사실이 없다는 말은 뒤집어 보면 문제가 한 걸음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루 내 기사가 밀리면 누군가의 처지는 하루 더 나빠질 수 있었다.

해법을 찾다 얼마 전 선배들이 쓴 기사를 봤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는 제목의 기획기사였다. 사람은 늘 죽었는데 대개 잊히거나 단신 기사로 처리됐다. 선배들은 산재 사망한 1200명의 명단을 1면에 실었다. 그러자 의미가 달라졌다. 사람을 사지로 모는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김용균은 수다한 사망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고 전태일의 연장선에 있었다. 지난달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사회 기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부산경마공원이 창설한 2005년 이래 7번째 자살사망자였다. 우리가 좇는 새로운 사실이란 오래된 문제의 반복인 경우가 많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새 의미를 낳는 큰 기사가 될 수도, 늘 있는 일이라며 보도의 우선순위서 밀려날 수도 있다.

“‘벽을 미는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에는 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말했다. 움직이지 않는 장애물과 기약없이 싸우는 이들을 묘사한 말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어떻게’를 고민했다. 간지럽지만, 경향신문에 들어와서 참 행운이라 생각했다. 쓰고 싶은 내용을 기사로 다룰 수 없어 괴로워하는 타사의 기자들을 보았다. 어떤 소재를 다뤄야 한단 직관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헤매는 이의 푸념도 들었다. 지금까지 이 회사는 무언가를 취재하겠다 나서는 내 의지를 깎아내린 적 없다. 내 능력이 부족해 좌절할 때는 있었지만, 그때도 늘 주변의 선배·동료들이 함께 고민해줬다.

이것이 ‘왜 멀쩡한 직장을 그만 두느냐’며 묻던 주변인들과 ‘왜 꼭 이 일이어야만 할까’라며 자책하던 스스로에게 주는 답이다. 적어도 내게, ‘이 일’을 하기에는 ‘이 직장’이 최선이다. 수많은 밤을 좌절과 자책으로 새우며 업의 본질을 고민한 지원자가 많을 줄로 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지만, 함께 머리 맞댈 동료로 당신을 기다린다.
1년 전 이맘 때쯤 경향신문 채용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렸다.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를 보며 ‘이렇게 준비했구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메모하고 참고했다. 기자 24시를 보면서 ‘입사하면 저렇게 사는구나’ 두려움과 부러움이 동시에 들었다. 매 공채 단계를 거칠 때마다 이곳에 들어와 이미 수없이 본, 선배들의 입사기를 정독하며 마음을 다졌다. 입사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막막함이 들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1년 전의 나처럼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지원자들이 어떤 심정인지,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내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입사 1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친구들은 묻는다. “왜 기자가 되고 싶었니”. 자기소개서를 쓸 때부터 최종 면접까지, 입사 후에도 따라붙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한결같이 답했다. “내 편견을 깨고 싶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갖고 있는 선입견을 차차 없애나가고 싶었다. 동기들의 대답은 나와는 또 달랐다.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다양하다. ‘이걸 계기로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면 높은 점수를 받겠지’라는 건 없다. 아주 사소한 계기더라도 솔직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으면 된다.

입사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실무평가였다. 늘 도서관에 가 신문을 읽고 스터디만 했지, 현장에서 뛰어본 경험은 별로 없었다. 언론사 공채 시험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전 한 언론사에서 인턴을 한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오래 돼 주제에 맞는 아이템을 잘 찾을 수 있을지, 기사를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사람들한테 거절당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내 질문을 무시하지 않을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졌다. 실무평가 당일, 한 가지는 꼭 지키려고 했다. ‘현장감’. 시험을 준비하면서 수없이 신문에서 봤던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현장에 가야지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중심으로 기사를 적으려고 노력했다. 이게 지원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시간에 내가 최대한 열심히 취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내가 선택한 현장이 잘 드러나야 한다고 여겼다. 이 선택이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입사기를 쓰고 있는 걸 보면 적어도 무시할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수습 교육도 많이 바뀌었다. ‘하리꼬미’는 없어진 지 몇 년 째다. ‘사스마와리’ 기간도 줄어들었다. 나와 동기들은 경찰서를 돌면서도 각종 기자회견, 사고 현장에 보내졌다. 경찰서 이외 현장들을 돌며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취재원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현장에서 어떤 걸 체크해야 하는지, 기사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을 배웠다. 수습 말미에는 아이템을 발굴해 취재도 했다. 사실관계가 복잡해 선배와 퇴근 시간을 넘기면서 기사 개요를 정리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많은 기사들이 내 바이라인을 달고 나갔다.

지금도 같은 이유로 기자를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당사자를 만나보면 달랐다.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며 새로 배우는 것. 이게 기자라는 직업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향신문’ 기자가 되면 이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각자의 이유를 지닌 채 경향신문 기자로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세계는 둘로 나뉘어져 있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入) 시험(試)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쪽은 합격자들의 세계다.”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된 공채 제도가 어떻게 새로운 좌절을 낳는지를 분석한 장강명의 책 <당선, 합격, 계급>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는 4년 만에 ‘지망생의 세계’에서 ‘합격자의 세계’로 어렵게 진입했습니다. 공채 제도가 낳는 좌절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압니다. 특히 제가 수년간 겪어온 바 언론사 공채는 단지 시험성적만으로 사람을 선발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른바 ‘언론고시’가 정량평가가 아닌 정성평가에 가깝기 때문일 겁니다. 언론사 시험은 객관식 정답을 적어내는 상식시험보다는 논술, 면접, 기사쓰기 같은 정해진 답이 없는 시험의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그렇다보니 운이 많이 작용하기도 해서 오래 준비한 사람을 제치고 ‘기자 한 번 해볼까’ 하고 도전한 사람이 바로 합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수험생이 노력으로 커버할 수 없는 요인들(성별, 학력, 나이 등)이 합격 당락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노력 끝에 웬만한 필기시험은 줄줄이 통과했을 정도로 실력은 궤도에 올랐으나 최종면접에서는 수차례 고배를 마셨습니다. 기자 지망생을 위한 모 저널리즘 스쿨의 최종면접에서조차 떨어진 어느 날, 면접관을 찾아가 불합격 이유를 물었습니다. ‘기자가 될 가능성이 큰(어린) 지원자가 유리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30대라는 나이, 여성, 인문계, 긴 취업공백기 등 악조건을 고루 갖춘 ‘취업 약자’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저도 경향신문에 합격했습니다. 54기 취재기자 4명 중 3명은 여성이고, ‘역대 최고령 기수’라는 말이 사내에서 나올 만큼 평균 연령대도 높습니다. 경향신문은 비교적 공정하게 ‘실력’으로 뽑는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장광설을 푼 까닭은, 지금의 채용제도에 혹시라도 좌절하고 있을 당신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 ‘실력’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내가 왜 경향신문 기자가 되어야 하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득해내는 능력입니다. 첫 번째 관문은 자기소개서입니다. 토익 만점 등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글이 안 되면 ‘서탈’합니다. 기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언론사 인턴이든 자원봉사든 뭐든 간에, 설득력 있게 풀어내면 됩니다. 두 번째 관문은 논술입니다. 정해진 시간 및 주제 안에서 문제의식을 가장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사람이 뽑힙니다. 탄탄한 논리구조에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참신한 논거를 덧붙인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마지막 관문은 면접입니다. 최종면접에서 ‘어떤 기사를 쓰고 싶냐’는 질문을 받고 저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약자 이야기만 많이 쓰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압박질문’이 돌아왔습니다. 경향신문이 진보적 성향을 지녔다고 지레짐작해 답변을 짜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관점이 됐든 면접관을 설득해내면 됩니다.

이러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경향신문을 봐야 합니다. 언론고시생의 교과서는 뉴스입니다. 전 경향신문을 비롯한 10대 일간지 및 주요 방송사 뉴스를 적어도 하루 3시간씩 투자해 모니터링했습니다. 시험을 앞두고는 도서관의 뉴스 아카이브에 가서 경향신문 반년치를 정독했습니다. 시사상식을 추려내고, 사설·기획기사 등에서 자주 다뤄진 주제로 논술을 썼습니다. 물론 차별화된 글감을 찾기 위해 책, 영화 등도 부지런히 봤습니다. 최종면접에도 도움이 됩니다. 지원자가 얼마나 경향신문을 관심 있게 지켜봐왔는지를 비중 있게 보기 때문입니다.

한 대학생에게 메일을 받았습니다. “여성, 미혼모, 성소수자, 노숙인등 소수자의 삶을 다양하게 다루셔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는데요, 이러한 주제들을 다루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경향신문 덕분입니다. 입사해보니, 언론사의 성향과 언론자유가 기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타사 기자들이 여성, 성소수자 등에 대해 발제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경향신문 기자가 돼 참 다행입니다.
그냥 질문해도 부담스러워하는 시민들에게 카메라까지 들이대야 한다. 2차 전형에서는 머리와 글로 싸우면 되었다. 3차 실무 평가가 진짜 난관이다. 초상권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입사를 희망하는 이라면 너무 겁먹지 않길 바란다. 정중하게 취재를 요청하면 누구나 흔쾌히 고견을 들려준다. 나는 이를 3차 실무 평가 때 몸소 깨달았다.

‘영상 기자 1호’라는 수식이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언젠가 맞이할 후배를 위해 친절한 ‘나의 경향신문 입사기’를 쓰려 한다. 3차 실무 평가에서 취재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듯 영상 기자는 영상이라는 하나의 소우주를 만들어내야 한다. 전형이 다소 바뀔 수도 있으나 내가 입사시험을 치른 2017년에는 제시어에 맞는 영상의 구성, 촬영, 편집까지 모두 해내야 했다.

제시어 ‘일하는 사람들’을 받아들고 생각을 확장해 ‘그림자 노동’이라는 주제를 잡았다. 편의점 택배,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등 자동화된 기기가 많아지면서 사용자는 인건비가 들지 않지만 소비자는 자기도 모르게 노동을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주제였다. 패스트푸드점이 많은 종로3가에서 카메라를 들기 시작해 편집을 위한 공공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있는 홍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취재했다.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손님, 그리고 점주를 만나 그 자리에서 섭외하고 영상으로 담았다. “뭐하는 거냐”며 쫓겨나기도 했지만 총 10명 이상의 인터뷰를 하였고 이름과 나이, 전화번호까지 받았다.

오후부터는 정해진 장소에서 편집 작업에 돌입해야 했다. 주어진 3시간 안에 명확하게 한 가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핵심적인 멘트를 골라야 하고 분위기를 전달할 스케치 영상도 비교적 잘 촬영한 것으로 가려냈다. 푸티지를 자르고 붙인 데다가 자막을 얹고 최종 추출까지, 영상 제작의 처음부터 끝까지 꼼짝없이 해내고 나면 소위 “당 떨어졌다”고 말할 정도로 지친다. 모든 파일을 제출하고 거리로 빠져나와서야 대단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 있을 토론 형식의 실무 면접과 최종 면접에 대한 정보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기자로서의 자기 확신과 경향신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이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도록 면접관 선배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던 점은 아직도 기억난다.

입사 이후에는 동기들과 함께 ‘마와리(경찰서 순회취재)’를 돌면서 취재 방법을 배운다. 취재와 영상, 사진, 편집 등 여러 직군의 동기들이 한 데 섞여 경향신문 기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취재 요령을 익힌 값진 시간이었다.

‘영상기자 1호’가 된 지 1년이 넘었다. 돌아보니 디지털로만 기획한 영상 뉴스 <김경수의 법률톡톡>이나 지면과 함께 진행한 창간기획 <혐오를 넘어> 등 기억나는 것이 많다. 신문사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기사와 영상은 어떠해야 하는지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지만 뉴미디어 시대를 맞이한 기자라면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영상의 역할이 점점 커지는 대전환의 시기다. 그러나 탄탄한 취재력과 기획력을 갖춘 경향신문 선배들과 함께라면 마냥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