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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향신문 입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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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하러 잠실로 가던 중에 인사팀에서 ‘경향신문 입사기’를 부탁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까짓 것 쓰겠다고 호기롭게 얘기했는데 막상 키보드를 잡으니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합격 전화를 받은 다음날 새벽이 생각난다. 잠들지 못하고 동네를 걷다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먹으며 신문이 오기를 기다렸다. 지면에 인쇄된 내 이름을 보고 싶어 조바심쳤던 몇 십 분이 지금도 선명하다. 말이 잘 정리되지 않지만 짧게나마 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을 졸업했다. 기자라는 직업을 결심한 때는 분명 오래 전이었는데 준비한 것이 없었다. 나는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하지 못했고 어학연수 경험도 없었다. 한 언론사에서 인턴기자 생활을 한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고등학생도 있다는 ‘토익’ 성적이 없었다. 그때부터 살기 위해 사는 삶을 살기 싫어서 뒤늦은 안간힘을 썼다. 나는 정말 염치없는 행운아였다. 모두들 알겠지만 노력은 배신한다. 하지만 내 노력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예비 후배들이 이 글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입사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너무 많은 정보와 방법들이 알려져 있어서 내가 말을 보탠다 한들 별 의미가 없겠다. 다만 기자로서 자신의 관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신문은 단순히 정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판다. 경험이든 학습이든 살면서 자신의 논리 세계를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꼭 필요하다. 입사시험은 임기응변으로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

수습기자로서 오전 4시에 종암경찰서 정문 앞에 섰던 ‘사스마와리’ 첫날이 기억난다. 무서웠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형사과 유리문에 매달려 재물손괴 사건이라도 달라고 애원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수도 없이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후 여러 사건 현장을 비틀거리며 뛰어다녔다. 백수로 살던 조용한 일상에 갑자기 세상 전체가 왁자하게 밀려들어와 나는 허우적거렸다. 그 엉망진창인 시간들을 견디고 사회부 사건팀 경찰기자가 됐다. 이제 형사과장에게 커피 한 잔 얻어먹겠다며 제법 능청스럽게 구는 내 모습에 쓴웃음이 난다.

기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많은 기사들이 내 바이라인을 달고 세상으로 흘러나갔다. 어떤 기사는 타인을 아프게 했다. 그런 기사는 기자에게도 오래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기자는 타인을 아프게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고통은 명확하고 정당해야 한다. 그래서 매번 기사를 송고하기 전에 잘못된 표현이나 잘못된 사실이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야 하는 것이다. 가끔씩 내 기사가 세상에 번져나가는 속도와 힘이 아찔하게 느껴진다.

경향신문에 입사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언론계에 발을 들인 뒤에야 자유로운 취재를 허락하는 회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써야 할 것을 쓸 수 없어 괴로워하는 타사 기자들의 푸념을 들었다. 수습기자 시절 경찰서 흡연실에 앉아 자신을 다독이는 말로 되풀이했던 우리의 사시(社是)를 생각한다. “진실 공정한 보도와 논평을 통해 할 말은 하고 쓸 것은 쓰는 사회 공기로서의 사명을 다한다.” 요즘 어쩐지 기자의 사명이란 말을 민망해하고 우스워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믿는다. 내가 조금이나마 나은 기사를 쓰면 조금이나마 나은 세상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도 조금이나마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어물어물 글을 닫으려 애쓰며 출근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사 입사과정은 흔히 '지하철 2호선과 같다'는 말을 한다. 노선을 순환하다가 운 좋게 멈추는 역(언론사)에 내림(입사함)을 비유한 것이다. '경향신문역'에 내리기 위해서는 경향신문 맞춤형 입사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향신문역'의 문을 열어준 티켓은 경향신문 지면이었다. 입사를 준비하며 매일 경향신문 1면부터 끝면까지 읽었다. 이러한 습관이 입사 2차 전형의 '시사상식'을 통과하는데 도움이 됐다. 기자의 입장이 되어 기사가 어떤 '야마'('기사의 주제'를 뜻하는 일본어)로 작성됐는지 고민하며 기사의 구조도 익힐 수 있었다. 원론적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정이었다.

경향신문이 힘을 실어 보도한 기획기사를 꼼꼼이 챙겨본 것도 도움이 됐다. 2016년 초 입사를 준비할 당시 경향신문은 우리나라 청년 문제를 다각적으로 다룬 '부들부들 청년'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실제 2차 전형의 논술 평가에 청년 관련 논제가 나왔다. '부들부들 청년' 기사를 읽으며 고민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경향신문이 기획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를 우선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입사 공고 전후로 나온 기획 기사를 주제로 다수의 글을 작성해 볼 것을 추천한다.

입사를 준비하며 경향신문이 어떤 언론사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경향신문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작업이었다. 경향신문은 독립언론을 표방한다. 경향신문 70년 역사에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기반은 2000년대 초반 '사원주주회사'로의 전환이었다. 경향신문에는 특정한 사주가 없다. 주식을 갖고 있는 사원들이 경향신문의 주인이다. 경향신문이 정치·자본 권력의 간섭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는 배경이다. '왜 경향신문 기자가 되어야 하는지'란 물음에 답을 구하는 힌트가 됐다.

입사의 1차 관문인 자기소개서 작성부터 마지막 4차 최종면접까지 이러한 고민의 흔적을 녹여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최종면접에 앞서 진행된 3차 실무평가는 '현장 취재-기사 작성-기획안 작성'을 거쳐 '주제토론-실무면접' 순으로 진행됐다. 먼저 4시간여 동안 현장 취재를 한 뒤 기사를 작성했다. 주제 선정에 1시간가량을 소모하는 등 시간 활용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했다. 제한된 시간을 고려해 '거창하지 않은 주제'로 '내실 있는 취재'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 작성에는 '왕도'가 없다. 평소 경향신문 등 지면기사를 필사하며 기사의 구조를 익히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기사 작성으로 끝난 줄 알았던 3차 전형은 계속됐다. 제시된 10개의 주제 가운데 하나를 정해 1시간30분 안에 지면 기획안을 작성하거나, 열 컷짜리 카드뉴스를 만드는 과제가 떨어졌다. '가장 자신 있는 주제'를 정해지면 기획안을 만들었다. 예상치 못해 당황했지만, 해당 주제와 관련해 평소 생각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해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며칠 뒤 4~5명이 한조가 돼 주제 토론을 실시했다. 사회자와 토론자 역할을 나누고, 10분 안에 토론 준비를 마무리해야 했다. 평소 다방면의 시사 이슈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 뒤 개인별로 진행된 실무면접은 앞서 작성한 기사와 기획안, 토론 내용 등을 이야기한 자리였다. 그 동안의 실무전형 내용을 되돌아보며 차분하게 답변하고자 노력했다.

최종면접을 거쳐 경향신문에 합격했지만 곧바로 정식기자가 된 건 아니었다. 6개월 동안 수습기자로서 '기자가 되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사스마와리' '하리꼬미' 등 생소한 일본어로 표현되는 일반 언론사의 혹독한 수습교육과는 달랐다. 1주일 가운데 6일을 경찰서에서 매일 2~3시간 잠자며 취재하는 비인간적인 '하리꼬미'를 없앴다. 대신 국제부·정치부·전국사회부·편집부·사진부·모바일팀 등의 부서를 돌며 다채로운 실무교육을 받았다.

국내 언론사 가운데 최초로 경향신문이 수습교육의 '혁신'을 이뤄낸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언론사 인턴 경력 등 '화려한 스펙'을 갖추지 못했지만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기자가 되겠다.'를 넘어 '경향신문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유효했던 것 같다. 경향신문의 사시처럼 '진실을 읽는' 기자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경향신문의 훌륭한 선배들, 앞으로 들어올 뛰어난 경향신문 후배들과 함께 좋은 기자로 성장해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문사? 너 기자해?”

“아니, 디자이너”

“그래...? 그럼 거기서 뭐해?”


호기심이 가득한 친구의 두 눈앞에서 정확히 대답을 못한 채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어.’ 하고 얼버무리던 적이 있었다. 입사 직후 커다란 모니터 앞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시절, 편집국 한 편에서 나의 자리를 찾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다. 물론, 이 ‘어색함’이 함께 입사한 모든 동기들의 경험은 아니었다. 지난해 경향신문은 국내 언론사 최초로 개발 직군을 공채로 채용했고, 언론을 전공해 개발을 배운 나는 이례적인 채용의 수혜자가 되었다. 그렇게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비기자' 명찰을 달고 편집국의 군식솔이 되어 출근 도장을 찍게 된 셈이다.

‘이례적’이었기에 모든 것이 초행길이었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떠밀려 전통매체는 이제 막 낯선 토양 위로 발을 디딘 참이었다. 지난 10개월은, 선배들과 함께 그 위를 두드려가며 조금씩 디지털 저널리즘의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이제 겨우 시작인만큼, 그 시간과 노력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 두려한다. 다만 객관적인 성공과 실패 관계없이 스스로는 감사한다. 초행길 위에서 실수도 어려움도 많았지만, 좌절보단 배움이 컸던 탓이다.

그래서 이제는 '뭘 하냐'는 질문에 그럭저럭 대답한다. "저는 경향신문 디지털 뉴스 시각화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가공하고 그래픽을 더하고, 지면 위 글이 아닌 또 다른 뉴스의 형태를 찾아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선배와 함께 인터랙티브 기사를 기획하고, 영상을 제작들고, 심지어 게임도 만들었다. 도전에 인색하지 않고 막내가 엉뚱한 제안을 해도 “그래 해봐라” 며 너그럽게 용인해주는 편집국의 방목형 환경 속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고, 수습에겐 과분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너도 저널리스트라는 생각을 가져라.’ 입사 초기 오며 가며 선배들께서 어깨를 두드리며 이 말을 많이 해주었다. 언력이라도 있었던 걸까. ‘개발자’라는 두 번째 꿈을 찾아 들어온 편집국의 한 구석에서 나는 오래전 접어 두었던 저널리즘의 꿈도 마주할 수 있었다. ‘최순실게이트’ 여섯 글자에 며칠을 공들인 그래픽이 공유되고, 외부 모임에서 “그 영상 경향신문거에요? 너무 잘 봤어요!” 한 마디 들을 때, ‘내가 이 길 위에 있어서 다행이다’고 생각한다.

1년의 소회만을 적어 놓은 것이 걸리지만, 이것이 차후 입사를 희망하는 자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디지털 미디어 기업으로 저변을 넓혀야 했던 전통매체의 필요와 저널리즘도 디지털도 놓을 수 없었던 스스로가 그 자리에 있어서 운이 좋게 경향신문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오롯이 나만의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작년에 열렸던 한 언론 컨퍼런스의 이름을 빌려, “미디어는 실험 중이고 실험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니까.”
오랜 준비 기간 끝에 합격했다. 막상 되고 나니 겁부터 났다. 수습기간을 잘 버텨낼까. 3년 만에 뽑은 편집부 후배인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쩔까. 독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될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14개월이 지난 지금도 고민을 사서 안고 다닌다.

불안할 때면 선배들을 본다. 이 사람들 사이 어딘가 쯤에 자리를 잡고 서면 묘한 안정감이 든다. ‘지금의 나’를 이보다 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떠올려 보면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나란히 서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내 곁에서 웃고 있는 이가 사진 속 그 시간을 가장 또렷이 설명하는 단서이자 기억이다. 선배들이 자신의 옆자리를 기꺼이 내주고 웃고 있다. 기자로서의 고민, 개인적인 고민 등 언제든 후배의 외침을 듣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이들이 경향신문 구성원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경향신문에 내가 설 곳이 있어 행복하다.

입사전형 응시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자 지난 전형과정 노하우를 짧게 붙인다.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는 말과 글로 풀어낼 것이 많은 인생이 부러웠다. 심한 부침에도 곧게 버틴 사람이 나였으면 했고 그렇게 보이고도 싶었다. 그러나 역시 물 흐르듯 별 큰 일 없이 살았다. 이야기의 완성을 위해선 수많은 자극으로 끊임없이 나를 고문해야 했다. 결국 자기소개서는 일상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인생을 깊이 있게 돌아보는 것으로 완성됐다. 스펙보다 스토리라지만, 그 스토리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었다.

2차 필기시험은 경향신문을 읽다 발견한 모르는 용어, 논술에 인용할 만한 통계와 글감은 모두 정리해 준비했다. 경향이 주목하는 이슈가 무엇인지, 경향의 입장은 어떠한지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었다. 신문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어떤 주제가 나와도 써먹을 만한 문구를 늘리는 데 중점을 뒀다. 식상한 철학자의 명언을 서두에 인용하는 것은 삼갔다. 논제를 풀어낼 최근 사례를 넣고 쉽게 쓰려 했다. 상식과 논술 중 어느 것에 더 강한지 파악해 자신 있는 항목은 최고점을 받아놓겠단 생각으로 최대한 준비한 게 좋은 결과를 냈다.

실무평가 중 르포기사 작성에선 잡은 주제가 의외로 잘 풀리지 않아 장소 이동에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광화문, 동대문으로 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 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튀는 방향의 취재는 무리였다. ‘기본에 충실’하잔 생각으로 시청광장에서 청송 사과축제를 취재했다. 평범한 내용과 흐름이었지만 형식에 맞춰 기사를 작성했기에 무난한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면접은 답이 없다. 말보다 글이 익숙하고 긴장이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이다. 그동안 꿈꿔온 기자란 직업, 경향신문의 편집, 나의 편집론, 경향신문에 대한 생각을 차분하게 말했다.
편집기자는 취재기자처럼 바이라인으로 독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없다. 그저 ‘마음을 울리는 한 줄의 제목’으로 독자의 가슴에 남으려 노력할 뿐이다. 단 한 줄에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해, 독자와 공감하는 지면, 독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지면을 만들려 편집국 어딘가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편집기자들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마냥 붙잡고 있다고 되는 직업이 아니다’란 충고를 했다. 남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대만큼은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진득하게 버티는 것. 그 열정 또한 힘이자 빛나는 재능이다. 시점의 문제란 걸 우리는 안다. 이제는, 당신차례다.
기성 언론에 소속된 기자가 되면, ‘언론인’인 동시에 ‘회사 사람’과 ‘직장인’이 된다. 하지만 언론사 입사를 꿈꾸는 언시생들은 보통 언론인으로서의 기자를 상상하는 데 그친다. 나머지 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일단 어디든 입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 어떤 선배를 만나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했다. 지난 14개월은 어벙한 풋내기 신입이 선배들의 도움과 가르침을 통해 기자 꼴을 갖춰가는 시간이었다. 입사 전엔 어느 회사를 들어가도 누릴 수 있으리라 짐작했던 사소한 것들이 입사 후 ‘경향신문이었기에 가능한 일들’로 드러났다. 가르침을 빙자한 선배의 폭언으로 괴로워하는 타사 수습들, 술자리 음주 강요로 입사 일주일 만에 퇴사한 신입기자, 회사 입맛에 맞게 바뀌어버린 기사 때문에 괴로워하는 타사 동기의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픈 동시에 ‘나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수익 활동과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으로서의 경향신문이 언시생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모르겠다. 구직자 입장에서 경제적 측면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다. 경향신문의 돈벌이 성적표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여기 공개된 자료에 대한 해석과 그 이후의 결정은 각자에 달렸다.

다만 경향신문은 언론인을 꿈꾸는 다른 회사 기자들이 부러워하는 언론사 중 하나다. 입사 후 타사 동료들로부터 “나도 경향신문 가고 싶었는데” “부럽다” “너희 선배들은 착한 것 같다” “이번 경향 기획 좋더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땐 자부심과 동시에 책임감이 피어난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선배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일하는 선배들에게서 그 답을 찾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