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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경향생활

우당탕탕 경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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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나는 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봤자 생판 초짜인 ‘문외한’들에게 그걸 평가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대중의 안목을 탓할 거예요? 웃기지 않는 코미디는 아무런 의미가 없죠. 웃기지 않은 코미디를 할거면 무대가 아닌 강의실으로 가야합니다.” 미국의 한 유명 코미디언이 한 이 말은 오래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간 신문 읽지 않는 독자들에 대한 언론사의 태도는 어쩌면 ‘안목을 탓하는’ 코미디언의 태도와 비슷했을런지 모릅니다.

한동안 ‘기레기’의 시대라는 자조가 있었습니다. 이에 맞춰 많은 언론사들(특히 종이신문)이 요 몇년간 종이신문의 몰락, 기레기 현상 등에 대한 기획을 수차례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이렇게 정의롭게 공공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취재를 하고 있는데, 이 좋은 기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리터러시’가 없는 독자 탓이라는 식으로요. 이런 불만은 생산자 입장에선 일견 일리가 있었을지 모릅니다만, 대중적으로 별 호응은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은 바뀌어가는 미디어 환경에서 ‘종이’ 밖에서 어떻게 독자들과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갈지를 시도하는 팀입니다. 현재 뉴콘텐츠팀에는 우리 회사의 여성, 젠더 관련 기사를 별도로 아카이빙하고 기획을 진행하는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 건강한 식문화를 위한 뉴스레터 플랫폼 <끼니로그>, 귀농귀촌 플랫폼 <밭>, 내러티브 기사를 실험하는 (브랜딩 중) 틱톡으로 1020에게 어필하는 <암호명 3701> 등이 있고, 데이터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다이브>가 있습니다. 저는 주로 책을 통해 중요한 사회 문제들을 ‘해찰’하는 뉴스레터 <인스피아>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뉴콘텐츠팀에 온 것은 2016년쯤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두번째는 자원했는데, 이유는 한가지였습니다. 국내외 뉴스레터의 재유행, 유료화 흐름에서 인터넷 세대에도 충성도 높고 진지한 ‘텍스트 독자’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텍스트를 읽을 준비가 된 이들을 상대로, 혹은 평소 책이나 텍스트를 읽지 않는 이들을 상대로도 ‘읽을 수 있는’ ‘읽을 맛이 나는’ 글의 장르를 어떤 형태로든 실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수많은 즐길거리가 넘치는 ‘관심 경제’의 시대 종이신문의 라이벌은 어쩌면 ‘타사’가 아닌 게임 유튜브와 최신 넷플릭스 드라마입니다.

종이신문 등의 몰락은 벌써 십수년이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만, 근래 전세계적인 상황을 볼 때 분명히 현재는 ‘뉴미디어 2.0’이라 부를만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탈진실 시대에 파편화된, 거짓 뉴스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신뢰할만한 글쓴이가 쓴, 맥락화된 정보를 스스로 선택해 돈을 내고라도 보고 싶다는 수요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 뉴욕타임즈의 디지털 구독자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수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입니다.

<인스피아>를 발행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뉴콘텐츠가 꼭 ‘가벼울’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젊은층이 기사를 읽지 않는 건 결코 리터러시 부족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뉴스레터에선 감성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보다 본격적인 벽돌책(철학, 사회과학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루는 주제도 혐오, 인수공통감염병, 난민문제, 탈진실, NFT 등 그닥 ‘재미나진’ 않은 주제입니다. 그런데도 현재 약 1700명의 뉴스레터 구독자 대부분이 2040이고, 매회차 저도 놀랄만큼 굉장히 진지한 피드백이 옵니다.

최근 <플랫> <다이브> 등 편집국 차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했냐> 역시 성실한 취재와 통계 등에 기반한 ‘진지한’ 기획이지만, 그간 ‘경향신문’의 주된 독자가 아니었던 2030 여성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습니다.

예전에 모바일팀(현재 디지털뉴스편집팀)에 있을 때 기자들은 ‘오래전 이날’이라는 코너를 돌아가면서 썼었습니다. 그때 지금과는 다른 과거 기사들에 키득거리면서 느꼈던 가장 큰 교훈이 있습니다. ‘종이신문’이 잘 지내오다가 근래 인터넷과 포털의 ‘폭격’에 의해 갑자기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신문은 수십년 역사를 버텨오며 수없이 모습을 바꿔왔다는 것입니다. ‘최신 소식’만을 담아야 했던 신문에 갑자기 서평이 끼어들어오고, 외부 오피니언면이 생기더니, 주말판을 만들고, ‘뜬금없이’ 레시피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미디어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20세기 초 라디오의 초창기 라디오 DJ를 맡기도 했는데, 그는 “라디오의 청취자는 대중이 아니라 혼자다. 마치 대중 연설문처럼 라디오 스크립트를 써선 안된다”며 “새로운 미디어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장르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백년 넘는 세월 동안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모여 지금의 미디어를 만들었습니다. 변화는 예외가 아닌 상수입니다. 핵심은 독자를 무시하고선 진전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다보니 전반적으로 진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만, 평소엔 꽤나 ‘우당탕탕’하면서 즐겁게 헤매고 만들고 있습니다. 민감한 주제의 글을 예약해둔 날엔 쫄깃한 감정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신경써서 준비한 회차에 장문의 감상이 오면 눈물이 날만큼 기쁘기도 합니다. 독자만큼이나 중요한 건 ‘나’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것도 결코 잊지 말아야합니다. 요는 쓰는 사람이 보람을 느끼고 재밌어야 한다는 거죠. ‘기레기’의 시대라지만, 쓰는 기자가 신나서 글을 쓰다보면 새로운 시대의 독자들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알쏭달쏭하지만 즐거운 여정에 함께 하게 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전 8시, 메일함을 살펴봅니다. 출입처에서 보낸 보도자료, 기자회견 알림, 제보글을 읽습니다. 신문을 보고,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타사 보도를 확인합니다. 발제, 타사 보도, 주요일정 등을 보고하는 시간은 9시입니다.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하는 기사, 해설 기사, 흥미로운 기사, 새로운 형식의 기사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 발제합니다.

출근지는 랜덤입니다. 서울 중부경찰서 기자실에 갈 때도 있지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지난 1월에는 한 기업의 직원이 회삿돈 천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아 경기도 모처의 자택 앞으로 찾아갔습니다. 숨겨놓은 횡령 자금을 찾기 위해 주변 쓰레기통을 뒤졌습니다.

지난 3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입국한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갔습니다. 한국에 돈을 벌러 오신 두 부모님이 2년 만에 아들을 만나 꼭 끌어안는 모습을 봤습니다. 전쟁으로 두 번 피난을 가야 했던 20대 초반 고려인의 일대일 인터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취재 뒤 기사를 쓰려하면 기사가 안 써집니다. 혼란스러웠던 취재 현장을 어떻게 하면 잘 정리해 보여줄지 고민합니다. 문장 하나를 여러 번 썼다 지웠다 반복한 끝에 기사를 다 쓰고 데스킹을 받습니다. 기사 마감 시각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입니다.

여기까지는 익히 들어본 ‘기자 24시’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생해서 쓴 기사, 조회수가 적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플랫폼으로 다가가기로 했습니다. 특히 뉴스 소비를 가장 적게 하는 세대한테요. 그래서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초·중학생들을 위한 쉽고 재밌는 뉴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숏폼 채널 ‘암호명 3701’을 제작하는 날에는 조금 다른 ‘24시’를 보냅니다.

“PD님, 장애인 이동권 시위 멈췄다고 하네요, 대본 수정하겠습니다!”

아침 9시는 PD님과의 카톡으로 시작합니다. 기존에 써놓았던 영상 대본(기사)을 다시 확인합니다. 상황이 바뀔 때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본 검토가 끝나면 촬영 때 필요한 소품과 의상을 챙깁니다. 새로 만든 코너 ‘식(食)톡’ 티저를 촬영할 때는 ‘밥상에서 나눌 수 있는 대화’ 컨셉에 맞추기 위해 집에서 접시를 가져갔습니다. 중학생 역할을 맡을 때는 교복과 비슷해 보이는 흰색 와이셔츠를 가져갑니다. 촬영일 하루에 영상 여러 편을 찍는 데다 한편 당 1인 다역을 소화해야하기 때문에 양다영 PD(56기·뉴콘텐츠팀)님과 제가 각 4~5벌씩 옷을 챙겨갑니다.

경향신문 사옥 3층에는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등장하는 캐릭터의 컨셉에 맞게 분장을 하거나 메이크업을 합니다. ‘코알라가 사라지고 있다고?’ 편을 찍을 때는 제 코를 까맣게 칠했습니다.

오후 2시, PD님의 큐사인과 함께 촬영을 시작합니다. PD님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감정선을 잡아주십니다. 수차례의 컷과 큐가 반복되고, 의상을 갈아입고, 발음이 꼬였던 대사를 다시 읽다보면 어느덧 2~3시간이 흘러 있습니다.

PD님과 다음 대본작성 마감일, 촬영일을 잡습니다. 퇴근하는 길,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회사 선배로부터 ‘연기실력이 늘었다’는 칭찬을 받으면 ‘2022년의 기자는 무엇을 하는 직업일까’ 생각이 들며 묘한 기분이 듭니다.
오전 6시 40분, 앞서 알람 세 개를 놓치고 네 번째에야 겨우 눈을 떠 떨어지듯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전날 기획재정부 공무원들과의 술자리로 자정을 넘겨 집에 들어온 탓에 몸은 평소보다 몇 갑절 더 무겁다. ‘5분만’이 간절하지만 거의 울다시피 인상 잔뜩 쓰고 화장실로 가 샤워기 물을 튼다. 하필 오늘이 3월 물가동향을 발표하는 날이라 아침부터 브리핑이 있어 게으름 부릴 틈이 없다.

걸음을 재촉해 정부 청사 브리핑룸에 도착한 시각은 7시 33분. 브리핑은 45분 시작이지만 30분까지는 브리핑룸에 도착해야 한다. 엠바고 시각인 8시에 맞춰 속보를 보내려면 늦어도 브리핑 시작 10분 전에는 도착해 자료를 훑어보고 기사를 간단하게라도 써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브리핑이 시작하면 발표자 발언을 받아치느라 속보 쓸 정신이 없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 전년동월대비 4.1% 상승’. 자료를 펼쳐보니 눈동자가 커진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마주하자 당황스럽다. 4% 물가 상승률이 10년 만이었던가. 혼자 호들갑을 떨며 한두 줄 속보를 정리하고 나니 어느덧 브리핑이 시작됐다. 오늘 통계청 국장님 말투가 유독 빠르지만 ‘타자기’ 노릇만 2년 넘게 한 터라 이젠 제법 능숙하게 정리할 수 있다. 30분 가량 ‘폭풍타이핑’ 끝에 브리핑이 종료됐다. 팀 메신저 방과 회사 내부 연결망(집배신)에 속기록을 올려놓고 나면 ‘출근 전’ 할 일은 끝났다. 휴, 크게 숨을 내쉬니 이제야 술이 좀 깬다.

아침 보고 시간인 9시 30분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가량. 타사 조간 보도를 체크하고 그날 기사 계획을 정리해 집배신에 올려야 하는 시간이다. 주요 경제 동향 발표가 있는 날은 아침 브리핑 때문에 고생하지만, 발표 내용 외에 기삿거리를 따로 찾지 않아도 되니 보고 시간에 마음은 편하다. 특히 오늘처럼 중요한 수치가 나온 날은 마치 기획 기사처럼 팀원이 함께 여러 관련 기사를 준비하는데, 전체 기사 구성 계획을 팀장 선배가 도맡아 정리하는 까닭에 뜻밖의 여유가 생겼다. 조삼모사겠지만 일단 당장은 땡큐다. 헛개수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킨다.

오전 10시. 기사 계획 보고가 끝나면 그날 내 역할도 정해진다. 상보에 들어갈 전문가 취재와 박스 기사 작성. 유류세 인하 등 정부의 고유가 대응책에 대한 효과와 향후 물가 전망 등 전문가 분석 내용을 전화 취재해 상보 집필자에게 보내준 다음, 식료품 등 장바구니 물가 급등 사례를 모아 원고지 6장 분량 박스 기사로 정리하는 것이 오늘의 내 미션이다.

질문지를 구성하고 주요 전문가 연락처를 수배한 후 본격적으로 전화를 돌리기 시작할 때가 오전 10시 30분 쯤. 한시간가량 정신없이 전화를 돌리고 나니 기사에 쓸만 한 내용이 제법 모였다. 유류세 인하 효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기재부 공무원과 점심 약속 시간이 닥쳐 이는 식후에 마저 보완하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하고 식당으로 향한다.

새 장관 인선 시기라 기자도, 공무원도 민감하다. 이런 시기에 식사 자리가 잡힌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만, 나도 그냥 노닥거리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물어볼 것은 물어봐야 한다. 해장국을 앞에 두고 먼저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다가, 최근 거론되는 후보들의 내부 평은 어떤지 슬쩍 물어본다. 얘기가 좀 트이자 여러 후보들 중 누가 유력한지, 각자 성격들은 어떤지, 물론 크게 유의미한 정보는 나오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보고할 것이 없을 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듣는다.

이렇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벌써 오후 1시 20분. 상보 추가 취재가 필요한데 내가 써야 할 기사까지 생각하니 슬슬 시간이 빠듯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은 점심 약속을 잡지 말걸. 늦은 후회를 뒤로 하고 기자실로 돌아와 전화를 몇 통 더 돌린다. 취재 내용을 상보 집필자에게 전달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2시를 훌쩍 넘었다.

마감 시간은 오후 4시 전후, 1시간 반 조금 넘게 남았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시간. 6매짜리(200자 원고지 기준) 기사라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좀처럼 써보지 않았던 형식이라 그런지 막상 쓰려니 조금 버벅댄다. 리드 문장을 구성하는 데만 30분 넘게 걸린다. 마음은 점점 급해진다. 3시 전후가 되자 기자실 분위기도 사뭇 바뀐다. 타닥타닥타닥. 꼭 내 마음 타들어 가는 소리처럼 정적 속에 노트북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가득하다.

4시를 조금 앞두고 어찌저찌 기사를 마감했다. 이쯤이면 선방했나 싶지만 집배신을 확인하자 나를 뺀 부서 선배들은 이미 모두 기사를 마감한 상태다. 자책 반 긴장 반 가슴을 부여잡고 기사 데스킹을 기다리는데, 동료 출입기자로부터 메시지가 한 통 온다. “창준씨, 오늘 ○○○과장 저녁은 세종중앙타운 △△△로 6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예약자명은 □□□라네요.” 공정거래위원회 ○○○과장 저녁 약속이 오늘이구나. 내일 쓸 기사를 지금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정을 확인하니 다행히 통계청이고 농촌진흥청이고 내일 발표 자료가 많다. 일단 한숨 돌리지만 한편으론 막막하다. 4개월 전 경제부를 간다고 했을 때 선배들이 일러준 기사 발굴 팁만 이미 책으로 한권인데, 이렇게 술만 먹고 자료만 처리하다 세월 보내는 것은 아닌지. 이런 저런 고민 중에 기사 데스킹이 끝났다. 다행히 무탈히 넘어간 듯 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가방을 싸고, 세종중앙타운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