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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경향생활

우당탕탕 경향생활

이름 내용
언제쯤 이 직업에 익숙해질까요? 어느덧 3년차가 됐습니다만 하루하루가 ‘우당탕탕’의 연속입니다. 국회의원 이름을 틀리게 받아적는 건 예삿일, 시시각각 변하는 정가 이슈를 따라잡지 못해 애를 먹을뿐더러 바쁘게 움직이는 정치인을 뒤쫓아 뛰다가 발을 헛디디기도 합니다. 활동 반경은 국회의사당으로 한정돼 있는데 뭐가 이리 정신이 없는지요. 어... 어! 어? 하다 보면 마감 시간입니다. 그래도 퇴근길은 언제나 즐거워요.

저는 ‘저니맨’입니다. 벌써 이곳이 네 번째 부서예요. 짧게 짧게 경험했던 이전 부서들과 비교해 보면 정치부 기자의 일상은 어느 정도 루틴이 정해져 있습니다. 아침 여덟 시까지 국회 소통관으로 출근해 각 방송사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올라오는 인터뷰 내용을 체크하고 정당별 아침 회의에 들어갑니다. 사방에서 말言이 쏟아집니다. 유구한 인터넷 중독자인 저의 타자 실력도 여의도의 말 폭포 앞에서는 맥을 못 추더군요. 오타와 생략으로 가득한 워딩을 보충하고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정치인들의 SNS와 당 논평을 훑다 보면 금세 정오가 가까워집니다. 정치부 기자답게 점심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정치인과 오찬을 하며 취재의 자양분이 되는 테이블 토크를 하는 것이지요. 저는 혼밥을 더 자주 하긴 해요.

오후에는 정치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현안에 대한 코멘트를 듣거나, 상임위 회의를 챙기거나, 백브리핑을 듣기 위해 회의장 앞에서 대기합니다. 바닥에 구부정하게 앉아서 요주의 정치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복도를 지나가는 의원들이 “아이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어떡해” 하면서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곤 합니다. 흰 바지는 입지 않는 것이 좋아요.
오랫동안 기다려 만난 정치인의 입에서 뻔한 이야기가 나오면 김이 빠지는 동시에 안심하고, 폭탄 발언이 나오면 도파민이 돌면서도 암담해지죠.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는 건 퇴근이 늦춰진다는 의미이니까요.

작년에는 스포츠부에 있었는데요, 정치부로 발령받았을 때 한 선배가 “스포츠는 경기 시간이라도 정해져 있지만 정치는 아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셨습니다. 정확한 통찰이었어요. 정치인들은 생각보다 일을 많이 하고 심심찮게 돌발 행동도 하거든요. 가끔씩 공식 일정뿐 아니라 국회 밖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을 살펴야 할 때도 있고요. 그래도 지금까지 저는 8 to 6 근무시간에서 벗어난 적이 많이 없습니다.

정치부가 스포츠부와는 극과 극을 달리는 부서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땐 오전에는 재택으로 전날 경기에 대한 후속 기사를 쓰고, 오후 서너시쯤 집을 나서서 저녁 경기를 챙기고, 경기 상보와 인터뷰 기사를 쓴 뒤 밤 11시쯤 귀가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경기장을 오가야 해서 활동 범위도 지금보다 훨씬 넓고 근무시간도 길었지만 혼자 움직이다 보니 지금보다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던 것 같네요.

부서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제가 부서를 자주 옮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어쩌면 그 전까지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을 해야 하니까요. 괴로운 적응 기간을 거치고 나면 그만큼 나의 세계관과 시야가 넓어졌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어요. 다 똑같아 보였던 정치인들이 개별 인물로 인식될 때의 쾌감, 밀물처럼 밀려드는 SNS 메시지에서 덜 중요한 문구와 파격적인 문구를 가려낼 수 있게 됐을 때의 성취감.

퇴근 후엔 정치인들과의 만찬에 참석해 추가 취재를 하거나 타사 정치 기사들을 훑으며 현안 공부를 하면 좋겠지만 저는 농구나 축구 경기 중계를 봅니다. 여전히 제 안에는 일말의 스포츠 기자 DNA가 남아 있는 탓이죠. 이전 부서에서의 경험은 부서를 옮긴다고 무 썰 듯이 잘려나가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누적되거든요. 다음 부서에서는 퇴근 후 정치 콘텐츠를 뒤적거릴지도 모르겠네요. 미련 잔뜩 남은 전 애인처럼.

내일에 대한 걱정을 묻어둔 채 저녁을 즐기다가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 헐레벌떡 나가서 익숙한 출근길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또 국회 소통관입니다. 실제로 저는 오전 여덟시 소통관에 들어서면서 매일 이 생각을 합니다. “또 왔군.” 우당탕탕 새 아침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편집국에는 입사 후부터 은퇴까지 같은 부서에만 있는 몇몇 부서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부서가 바로 ‘사진부’입니다. 타 부서보다는 조금 더 끈끈하고, 가끔 조금은 국밥과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쉿 비밀입니다) 우당탕탕 사진부 막내의 하루 이야기를 글로 한번 옮겨 보겠습니다.

사진부는 인원의 제한이 있다 보니 근무 형태가 다양합니다. 조근, 야근, 예비, 평근. 근무에 맞춰 출근 시간도 매일 다릅니다. 아침에 출근할 땐 당일 신문들을 보며 타사엔 어떤 사진들이 실렸는지, 선배들은 각각 어떻게 찍었는지 확인해봅니다. 포탈 검색창을 켜 온라인 기사에는 어떤 사진을 가져다 썼는지도 확인해 봅니다. 아직까진 지면과 온라인 양쪽을 신경 써야 하는 부서 특성상 ‘편집기자는 어떤 사진을 좋아하고 취재기자는 어떤 사진을 좋아하는가?’도 늘 고민입니다. 물론 보는 눈이 부족한 막내는 보고 또 봐도 잘 모르겠단 고민에 다다릅니다. 이럴 때 선배 혹은 동기들이 주는 조언은 보다 눈을 트이게 합니다.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국제 등등 안 가는 취재가 없는 만큼 다양한 조언을 듣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입에 “우와 천재 아니세요?”란 감탄사를 입에 달고 삽니다. 언젠가 은혜를 갚겠단 계획도 있는데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에게 은혜를 갚을 수도 있겠습니다.

반드시 현장에 가야 하는 만큼 늘 날씨를 살피고 (날씨는 좋아도 ‘일’ 안 좋아도 ‘일’입니다) 매일 뉴스 속보에 놀라며 삽니다. 어느 현장이든 안전하고 신속하게 데려다주시는 수송부 형님과 함께 차 안에서 “비야 멈춰라”를 빈 적도, 반대로 “빗방울아 더 세차게 내려라”를 빈 적도 있습니다. 취재에 오랜 기간이 걸리는 산불과 대형 사고만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제 사물함에는 언제나 여분의 옷과 양말이 준비돼있습니다. 주변 지인들은 큼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 이거 수빈이는 안 가?”하며 놀리고, 저는 “본인 일 아니라고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하며 질색을 합니다. 하지만 사실 현장에 가는 건 좋습니다. 남의 일로, 글자로 보고 넘겼을 일을 직접 들여다본다는 것은 기록과 취재 그 이상의 가슴 벅참, 타인을 타인으로 만들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각종 미디어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저는 여전히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 한 장’의 힘을 믿습니다.

물론 갑작스레 잘 모르는 채로 혹은 자신 없는 취재를 맡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한 번 놓친 장면을 되 담을 수가 없는 직업이다 보니 피고인의 검찰 출석 같은, 짧은 시간 내에 한 장을 잡아내야 하는 현장을 가면 신경이 곤두섭니다. 타사 선배들에게 연신 양해를 구하며 괜찮아 보이는 자리를 잡고 연사를 남발합니다. 스튜디오에서 피사체에 맞춰 조명을 배치하고 카메라를 노트북에 연결해 노출을 맞추고 완성된 한 장만 만들면 되는, 별로 다 싶으면 될 때까지 다시 찍을 기회가 있는 환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보니 한동안은 계속 현장에서 어리벙벙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 나 아는 게 없는데 어떡하지’하는 취재를 맡게 됐을 땐 사진기자라면 누구나 있는 ‘제2의 동기’ 사진 기자 친구들에게 재빠르게 SOS를 칩니다. 오늘 ‘ㅇㅇ현장 가는 사람?’, ‘ㅇㅇ해 본 사람?’, ‘ㅇㅇ 스케치하기 좋은 장소 아는 사람?’ 떨림으로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저를 늘 동기들이 구원해냅니다. 회사 동기들과도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저만큼 동기 복이 넘치는 기자도 흔하지 않을 겁니다.

하루 평균 2~3건의 현장을 다녀오면 바짝 긴장했던 막내의 하루도 슬슬 마무리됩니다. 편집부에서 선택돼 넘어오는 사진의 설명을 넘기고, 독자들이 관심 있을 법한 현장은 온라인 기사로도 작성하고, 카메라와 메모리 카드를 점검하고, 오늘 다녀온 취재 현장을 정리해 기록합니다. 1년 정도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 일의 반복성이 파악된다고 하는데, 제가 2년 이곳저곳 누빈 결과 아직도 처음 가보는 현장이 가득하고 사진 취재는 늘 새롭고 어렵고 고민되고 짜릿합니다. 곧 들어올 당신의 기자 생활은 어떠할지 괜스레 저도 설레는 상상을 하며 하루 마무리합니다.
오전 8시, 메일함을 살펴봅니다. 출입처에서 보낸 보도자료, 기자회견 알림, 제보글을 읽습니다. 신문을 보고,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타사 보도를 확인합니다. 발제, 타사 보도, 주요일정 등을 보고하는 시간은 9시입니다.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하는 기사, 해설 기사, 흥미로운 기사, 새로운 형식의 기사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 발제합니다.

출근지는 랜덤입니다. 서울 중부경찰서 기자실에 갈 때도 있지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지난 1월에는 한 기업의 직원이 회삿돈 천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아 경기도 모처의 자택 앞으로 찾아갔습니다. 숨겨놓은 횡령 자금을 찾기 위해 주변 쓰레기통을 뒤졌습니다.

지난 3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입국한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갔습니다. 한국에 돈을 벌러 오신 두 부모님이 2년 만에 아들을 만나 꼭 끌어안는 모습을 봤습니다. 전쟁으로 두 번 피난을 가야 했던 20대 초반 고려인의 일대일 인터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취재 뒤 기사를 쓰려하면 기사가 안 써집니다. 혼란스러웠던 취재 현장을 어떻게 하면 잘 정리해 보여줄지 고민합니다. 문장 하나를 여러 번 썼다 지웠다 반복한 끝에 기사를 다 쓰고 데스킹을 받습니다. 기사 마감 시각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입니다.

여기까지는 익히 들어본 ‘기자 24시’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생해서 쓴 기사, 조회수가 적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플랫폼으로 다가가기로 했습니다. 특히 뉴스 소비를 가장 적게 하는 세대한테요. 그래서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초·중학생들을 위한 쉽고 재밌는 뉴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숏폼 채널 ‘암호명 3701’을 제작하는 날에는 조금 다른 ‘24시’를 보냅니다.

“PD님, 장애인 이동권 시위 멈췄다고 하네요, 대본 수정하겠습니다!”

아침 9시는 PD님과의 카톡으로 시작합니다. 기존에 써놓았던 영상 대본(기사)을 다시 확인합니다. 상황이 바뀔 때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본 검토가 끝나면 촬영 때 필요한 소품과 의상을 챙깁니다. 새로 만든 코너 ‘식(食)톡’ 티저를 촬영할 때는 ‘밥상에서 나눌 수 있는 대화’ 컨셉에 맞추기 위해 집에서 접시를 가져갔습니다. 중학생 역할을 맡을 때는 교복과 비슷해 보이는 흰색 와이셔츠를 가져갑니다. 촬영일 하루에 영상 여러 편을 찍는 데다 한편 당 1인 다역을 소화해야하기 때문에 양다영 PD(56기·뉴콘텐츠팀)님과 제가 각 4~5벌씩 옷을 챙겨갑니다.

경향신문 사옥 3층에는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등장하는 캐릭터의 컨셉에 맞게 분장을 하거나 메이크업을 합니다. ‘코알라가 사라지고 있다고?’ 편을 찍을 때는 제 코를 까맣게 칠했습니다.

오후 2시, PD님의 큐사인과 함께 촬영을 시작합니다. PD님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감정선을 잡아주십니다. 수차례의 컷과 큐가 반복되고, 의상을 갈아입고, 발음이 꼬였던 대사를 다시 읽다보면 어느덧 2~3시간이 흘러 있습니다.

PD님과 다음 대본작성 마감일, 촬영일을 잡습니다. 퇴근하는 길,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회사 선배로부터 ‘연기실력이 늘었다’는 칭찬을 받으면 ‘2022년의 기자는 무엇을 하는 직업일까’ 생각이 들며 묘한 기분이 듭니다.
오전 6시 40분, 앞서 알람 세 개를 놓치고 네 번째에야 겨우 눈을 떠 떨어지듯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전날 기획재정부 공무원들과의 술자리로 자정을 넘겨 집에 들어온 탓에 몸은 평소보다 몇 갑절 더 무겁다. ‘5분만’이 간절하지만 거의 울다시피 인상 잔뜩 쓰고 화장실로 가 샤워기 물을 튼다. 하필 오늘이 3월 물가동향을 발표하는 날이라 아침부터 브리핑이 있어 게으름 부릴 틈이 없다.

걸음을 재촉해 정부 청사 브리핑룸에 도착한 시각은 7시 33분. 브리핑은 45분 시작이지만 30분까지는 브리핑룸에 도착해야 한다. 엠바고 시각인 8시에 맞춰 속보를 보내려면 늦어도 브리핑 시작 10분 전에는 도착해 자료를 훑어보고 기사를 간단하게라도 써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브리핑이 시작하면 발표자 발언을 받아치느라 속보 쓸 정신이 없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 전년동월대비 4.1% 상승’. 자료를 펼쳐보니 눈동자가 커진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마주하자 당황스럽다. 4% 물가 상승률이 10년 만이었던가. 혼자 호들갑을 떨며 한두 줄 속보를 정리하고 나니 어느덧 브리핑이 시작됐다. 오늘 통계청 국장님 말투가 유독 빠르지만 ‘타자기’ 노릇만 2년 넘게 한 터라 이젠 제법 능숙하게 정리할 수 있다. 30분 가량 ‘폭풍타이핑’ 끝에 브리핑이 종료됐다. 팀 메신저 방과 회사 내부 연결망(집배신)에 속기록을 올려놓고 나면 ‘출근 전’ 할 일은 끝났다. 휴, 크게 숨을 내쉬니 이제야 술이 좀 깬다.

아침 보고 시간인 9시 30분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가량. 타사 조간 보도를 체크하고 그날 기사 계획을 정리해 집배신에 올려야 하는 시간이다. 주요 경제 동향 발표가 있는 날은 아침 브리핑 때문에 고생하지만, 발표 내용 외에 기삿거리를 따로 찾지 않아도 되니 보고 시간에 마음은 편하다. 특히 오늘처럼 중요한 수치가 나온 날은 마치 기획 기사처럼 팀원이 함께 여러 관련 기사를 준비하는데, 전체 기사 구성 계획을 팀장 선배가 도맡아 정리하는 까닭에 뜻밖의 여유가 생겼다. 조삼모사겠지만 일단 당장은 땡큐다. 헛개수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킨다.

오전 10시. 기사 계획 보고가 끝나면 그날 내 역할도 정해진다. 상보에 들어갈 전문가 취재와 박스 기사 작성. 유류세 인하 등 정부의 고유가 대응책에 대한 효과와 향후 물가 전망 등 전문가 분석 내용을 전화 취재해 상보 집필자에게 보내준 다음, 식료품 등 장바구니 물가 급등 사례를 모아 원고지 6장 분량 박스 기사로 정리하는 것이 오늘의 내 미션이다.

질문지를 구성하고 주요 전문가 연락처를 수배한 후 본격적으로 전화를 돌리기 시작할 때가 오전 10시 30분 쯤. 한시간가량 정신없이 전화를 돌리고 나니 기사에 쓸만 한 내용이 제법 모였다. 유류세 인하 효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기재부 공무원과 점심 약속 시간이 닥쳐 이는 식후에 마저 보완하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하고 식당으로 향한다.

새 장관 인선 시기라 기자도, 공무원도 민감하다. 이런 시기에 식사 자리가 잡힌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만, 나도 그냥 노닥거리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물어볼 것은 물어봐야 한다. 해장국을 앞에 두고 먼저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다가, 최근 거론되는 후보들의 내부 평은 어떤지 슬쩍 물어본다. 얘기가 좀 트이자 여러 후보들 중 누가 유력한지, 각자 성격들은 어떤지, 물론 크게 유의미한 정보는 나오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보고할 것이 없을 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듣는다.

이렇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벌써 오후 1시 20분. 상보 추가 취재가 필요한데 내가 써야 할 기사까지 생각하니 슬슬 시간이 빠듯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은 점심 약속을 잡지 말걸. 늦은 후회를 뒤로 하고 기자실로 돌아와 전화를 몇 통 더 돌린다. 취재 내용을 상보 집필자에게 전달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2시를 훌쩍 넘었다.

마감 시간은 오후 4시 전후, 1시간 반 조금 넘게 남았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시간. 6매짜리(200자 원고지 기준) 기사라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좀처럼 써보지 않았던 형식이라 그런지 막상 쓰려니 조금 버벅댄다. 리드 문장을 구성하는 데만 30분 넘게 걸린다. 마음은 점점 급해진다. 3시 전후가 되자 기자실 분위기도 사뭇 바뀐다. 타닥타닥타닥. 꼭 내 마음 타들어 가는 소리처럼 정적 속에 노트북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가득하다.

4시를 조금 앞두고 어찌저찌 기사를 마감했다. 이쯤이면 선방했나 싶지만 집배신을 확인하자 나를 뺀 부서 선배들은 이미 모두 기사를 마감한 상태다. 자책 반 긴장 반 가슴을 부여잡고 기사 데스킹을 기다리는데, 동료 출입기자로부터 메시지가 한 통 온다. “창준씨, 오늘 ○○○과장 저녁은 세종중앙타운 △△△로 6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예약자명은 □□□라네요.” 공정거래위원회 ○○○과장 저녁 약속이 오늘이구나. 내일 쓸 기사를 지금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정을 확인하니 다행히 통계청이고 농촌진흥청이고 내일 발표 자료가 많다. 일단 한숨 돌리지만 한편으론 막막하다. 4개월 전 경제부를 간다고 했을 때 선배들이 일러준 기사 발굴 팁만 이미 책으로 한권인데, 이렇게 술만 먹고 자료만 처리하다 세월 보내는 것은 아닌지. 이런 저런 고민 중에 기사 데스킹이 끝났다. 다행히 무탈히 넘어간 듯 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가방을 싸고, 세종중앙타운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