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경향생활
우당탕탕 경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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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여름의 초입이었습니다. 최종 합격 전화를 받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날 신문 1면에 실린 이름 세 글자를 본 그 순간을 저는 영영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어느덧 햇수로 3년차 기자가 됐습니다. 그때의 감동은 쏟아지는 업무에 희석되고, 그때의 벅참은 몰아치는 스트레스에 빛 바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기자라는 직업을 좋아합니다. ‘우당탕탕 경향생활’을 써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제가 이 글을 써도 될까 수차례 고민했습니다. 제 글은 정답이 아닙니다. 제 생활은 더더욱 정답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언젠가 현장에서 마주할 지원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정치부 정당팀에서 일합니다. 정당팀은 야당팀과 여당팀으로 나뉩니다. 포털 사이트에 ‘말진’을 검색해보니 “국회와 같은 출입처에 출입하는 기자들 가운데 해당 언론사에서 가장 연차가 낮은 사람”이라고 나오더군요. 그게 접니다. 저는 팀에서도 부서에서도 막내인 ‘말진 중 말진’입니다. 말진의 하루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회 소통관 기자실로 출근합니다. 조간 신문을 읽습니다. 전날 같은 현장을 보고 들은 기자가 다른 관점에서 쓴 기사가 가장 재밌습니다. 출입하는 정당의 그날 일정을 올립니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스크립트를 정리합니다. 아침은 빠르게 흐릅니다. 어느덧 정당별 아침회의에 들어갈 시간입니다. 소통관에서 본청으로 향합니다. “아 맞다 명함!” “아 맞다 이어폰!”을 외치는 순간이 제법 줄었습니다. 눈치껏 노트북 파우치에 노트북과 마우스, 마우스 패드, 이어폰을 욱여넣고 바지 주머니에 명함과 출입증을 넣습니다. 아침회의에서는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모두발언을 중심으로 받아치기를 합니다. 회의가 끝나면 복도로 나가 백브리핑을 기다립니다. 기사에서 대개 “000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라고 쓰이는 그 브리핑이지요. 정치인들의 말을 듣고 받아 치는 게 저의 일상이지만, 중요 회의나 기자회견을 앞두고는 여전히 처음처럼 긴장됩니다. 속보로 나가야 하는데 잘못 받아칠까, 오탈자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키워드를 못 알아들어 엉뚱한 말을 적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합니다. 상임위별로 이슈가 돌아갑니다. 언제 어떤 상임위를 맡을지 모르니 주요 쟁점은 평소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팩트가 발굴되거나 특이 발언이 나오면 속보로 처리합니다. 정치부에선 ‘말의 무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들의 말 한 마디에 수백억원의 예산이 오가고, 그날의 발제가 모두 뒤집히고, 때론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기도 합니다. 국회의원 개개인은 모두 입법기관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그들의 말을 전하는 저 역시 말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어쩌면 그보다 무거운 무게를 짊어집니다. 말의 홍수 속에서 의미있는 말을 고르고, 알맞은 해석을 붙여 전달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그들의 말의 무게를 생각하고 말을 하는지 감시해야 합니다. 입사 1주년에 남긴 글을 봤습니다.“내가 쓴 글이, 내가 택한 단어가, 내가 채운 빈 칸이, 내가 던진 질문이, 내가 가진 시각이, 그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 1년이었다. 앞으로도 그 기도는 계속될 것 같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2주년을 넘긴 지금도 저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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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경향신문 6층 편집국, 팔락이는 종이 소리와 좌악 밑줄 긋는 소리가 적막을 깹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쫓기듯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고요, 프린터에서 연신 종이가 인쇄되는 소리는 초조하기까지 합니다. 이곳은 바로 콘텐츠편집부입니다. 편집기자는 취재기자가 갓 출고한 기사를 제일 먼저 읽습니다. 저녁 6시가 되기 전 기사의 핵심을 녹여낸 제목을 만들고 부제목까지 생각해내야 하거든요. 제목은 경향다우면서도 눈길을 끌어야 하고, 모두가 이해하기 쉬워야 합니다. 단순히 기사 내용을 요약한 제목은 독자가 흥미를 잃게 만듭니다. 제목 고민이 끝났다면 지면을 돋보이게 할 메인 사진의 위치와 크기, 기사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그래픽 디자인, 이 모든 요소들을 강·중·약 리듬에 맞춰 조화롭게 배치한 레이아웃까지 고민을 거듭해 ‘경향신문’을 완성합니다. 편집기자를 ‘최초의 독자이자 최후의 기자’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콘텐츠편집부는 총 3개의 팀으로 구성됩니다. 1팀은 온라인 홈페이지, 포털, SNS 기사의 제목과 유통을 총괄합니다. 어떻게 하면 온라인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는 팀입니다. 경향신문이 바라보는 관점으로 세상의 모든 뉴스를 발 빠르게 전하는 팀이기도 합니다. 2, 3팀은 신문 지면을 편집합니다. 여러분이 보는 종이 신문입니다. 아무리 신문의 위기, 미디어의 위기라고 하지만 문 앞에 배달된 종이신문만의 매력은 분명히 있죠. 2, 3팀은 ‘경향의 얼굴’인 1면과 종합, 정치, 사회, 국제, 경제, 문화, 스포츠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콘텐츠편집부 막내이자 편집기자 3년 차인 저는 2팀 소속으로, 동기와 함께 국제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각자 담당하는 지면 말고도 추가 면과 사전 제작면을 배정받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막내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갈지 궁금하지 않나요? 저는 조간신문들을 훑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같은 내용의 기사를 다른 언론사에선 어떻게 소화했는지 비교하죠. 콘텐츠편집부에선 이 순간을 ‘성적표를 확인한다’고들 표현합니다. 분명 같은 이야기여도 편집기자마다 포인트를 어디에 두었는지에 따라 제목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신문을 다 봤다면 1팀을 보조해 온라인 기사들의 제목을 다듬고 부제를 추가합니다. 이후엔 국내 언론사와 외신을 둘러보며 전날 밤 지구촌에서 어떤 사건·사고가 일어났는지 조사합니다. 동시에 메인 사진 후보도 골라둡니다. 그리고 국제부 업무보고, 콘텐츠 리스트를 돌아보며 오늘 국제면에 들어올 기사들을 대비합니다. 오후 부장회의가 끝나고 신문에 들어갈 뉴스들이 엄선됩니다. 이때가 대략 3시쯤입니다. 이제부턴 시간싸움입니다. 한 시간 내로 메인 사진을 선택하고 기사 분량에 맞게 레이아웃을 짠 뒤 1차 데스킹을 받습니다. 통과된다면 다시 두 시간 내로 기사 5개의 제목을 데스킹 받습니다. 마지막 메인 사진의 제목까지 완성했다면 지면을 인쇄해 최종 데스킹을 거쳐 마감합니다. 만약 그날 배정받은 지면이 국제면 하나가 아니라면, 이 과정을 같은 시간 내에 두 배로 빠르게 처리해야 하죠. 야근 날일 땐 잽싸게 저녁을 해결하고 돌아와 4명의 조원이 전체 지면을 나누어 마지막까지 점검합니다. 이렇게 하루가 끝나면 다시 다음날 성적표 공개 시간이 다가오는 거예요. 힘들고 속상한 순간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편집이 재미있고, 경향신문의 ‘편집’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편집에 진심인 선배들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면을 부여잡고 우당탕탕 구르는 저를 보며 메시지로 조언해 주는 선배들, “시간이 해결해 줄테니 조급해하지 말라”는 선배들, 편집 고민을 늘어놓으면 마음을 다해 상담해 주는 선배들, 슬며시 간식을 밀어 넣어주는 선배들까지. 경향신문을 만든다는 사명감을 지닌 선배들이 가득한 이곳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경향 콘텐츠편집부는 편집기자협회에서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편집상도 휩쓸고 있습니다. 지난 23년을 통틀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죠. 여기까지 읽어주신 당신, 혹시 6층 편집국에서 제목을 고민하는 본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 뛰진 않았나요? 자랑스러운 경향신문 콘텐츠편집부로 어서 오세요. 편집을 향한 애정과 선배들의 내리사랑을 모조리 물려 드릴 준비가 되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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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이 직업에 익숙해질까요? 어느덧 3년차가 됐습니다만 하루하루가 ‘우당탕탕’의 연속입니다. 국회의원 이름을 틀리게 받아적는 건 예삿일, 시시각각 변하는 정가 이슈를 따라잡지 못해 애를 먹을뿐더러 바쁘게 움직이는 정치인을 뒤쫓아 뛰다가 발을 헛디디기도 합니다. 활동 반경은 국회의사당으로 한정돼 있는데 뭐가 이리 정신이 없는지요. 어... 어! 어? 하다 보면 마감 시간입니다. 그래도 퇴근길은 언제나 즐거워요. 저는 ‘저니맨’입니다. 벌써 이곳이 네 번째 부서예요. 짧게 짧게 경험했던 이전 부서들과 비교해 보면 정치부 기자의 일상은 어느 정도 루틴이 정해져 있습니다. 아침 여덟 시까지 국회 소통관으로 출근해 각 방송사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올라오는 인터뷰 내용을 체크하고 정당별 아침 회의에 들어갑니다. 사방에서 말言이 쏟아집니다. 유구한 인터넷 중독자인 저의 타자 실력도 여의도의 말 폭포 앞에서는 맥을 못 추더군요. 오타와 생략으로 가득한 워딩을 보충하고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정치인들의 SNS와 당 논평을 훑다 보면 금세 정오가 가까워집니다. 정치부 기자답게 점심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정치인과 오찬을 하며 취재의 자양분이 되는 테이블 토크를 하는 것이지요. 저는 혼밥을 더 자주 하긴 해요. 오후에는 정치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현안에 대한 코멘트를 듣거나, 상임위 회의를 챙기거나, 백브리핑을 듣기 위해 회의장 앞에서 대기합니다. 바닥에 구부정하게 앉아서 요주의 정치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복도를 지나가는 의원들이 “아이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어떡해” 하면서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곤 합니다. 흰 바지는 입지 않는 것이 좋아요. 오랫동안 기다려 만난 정치인의 입에서 뻔한 이야기가 나오면 김이 빠지는 동시에 안심하고, 폭탄 발언이 나오면 도파민이 돌면서도 암담해지죠.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는 건 퇴근이 늦춰진다는 의미이니까요. 작년에는 스포츠부에 있었는데요, 정치부로 발령받았을 때 한 선배가 “스포츠는 경기 시간이라도 정해져 있지만 정치는 아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셨습니다. 정확한 통찰이었어요. 정치인들은 생각보다 일을 많이 하고 심심찮게 돌발 행동도 하거든요. 가끔씩 공식 일정뿐 아니라 국회 밖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을 살펴야 할 때도 있고요. 그래도 지금까지 저는 8 to 6 근무시간에서 벗어난 적이 많이 없습니다. 정치부가 스포츠부와는 극과 극을 달리는 부서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땐 오전에는 재택으로 전날 경기에 대한 후속 기사를 쓰고, 오후 서너시쯤 집을 나서서 저녁 경기를 챙기고, 경기 상보와 인터뷰 기사를 쓴 뒤 밤 11시쯤 귀가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경기장을 오가야 해서 활동 범위도 지금보다 훨씬 넓고 근무시간도 길었지만 혼자 움직이다 보니 지금보다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던 것 같네요. 부서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제가 부서를 자주 옮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어쩌면 그 전까지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을 해야 하니까요. 괴로운 적응 기간을 거치고 나면 그만큼 나의 세계관과 시야가 넓어졌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어요. 다 똑같아 보였던 정치인들이 개별 인물로 인식될 때의 쾌감, 밀물처럼 밀려드는 SNS 메시지에서 덜 중요한 문구와 파격적인 문구를 가려낼 수 있게 됐을 때의 성취감. 퇴근 후엔 정치인들과의 만찬에 참석해 추가 취재를 하거나 타사 정치 기사들을 훑으며 현안 공부를 하면 좋겠지만 저는 농구나 축구 경기 중계를 봅니다. 여전히 제 안에는 일말의 스포츠 기자 DNA가 남아 있는 탓이죠. 이전 부서에서의 경험은 부서를 옮긴다고 무 썰 듯이 잘려나가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누적되거든요. 다음 부서에서는 퇴근 후 정치 콘텐츠를 뒤적거릴지도 모르겠네요. 미련 잔뜩 남은 전 애인처럼. 내일에 대한 걱정을 묻어둔 채 저녁을 즐기다가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 헐레벌떡 나가서 익숙한 출근길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또 국회 소통관입니다. 실제로 저는 오전 여덟시 소통관에 들어서면서 매일 이 생각을 합니다. “또 왔군.” 우당탕탕 새 아침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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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는 입사 후부터 은퇴까지 같은 부서에만 있는 몇몇 부서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부서가 바로 ‘사진부’입니다. 타 부서보다는 조금 더 끈끈하고, 가끔 조금은 국밥과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쉿 비밀입니다) 우당탕탕 사진부 막내의 하루 이야기를 글로 한번 옮겨 보겠습니다. 사진부는 인원의 제한이 있다 보니 근무 형태가 다양합니다. 조근, 야근, 예비, 평근. 근무에 맞춰 출근 시간도 매일 다릅니다. 아침에 출근할 땐 당일 신문들을 보며 타사엔 어떤 사진들이 실렸는지, 선배들은 각각 어떻게 찍었는지 확인해봅니다. 포탈 검색창을 켜 온라인 기사에는 어떤 사진을 가져다 썼는지도 확인해 봅니다. 아직까진 지면과 온라인 양쪽을 신경 써야 하는 부서 특성상 ‘편집기자는 어떤 사진을 좋아하고 취재기자는 어떤 사진을 좋아하는가?’도 늘 고민입니다. 물론 보는 눈이 부족한 막내는 보고 또 봐도 잘 모르겠단 고민에 다다릅니다. 이럴 때 선배 혹은 동기들이 주는 조언은 보다 눈을 트이게 합니다.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국제 등등 안 가는 취재가 없는 만큼 다양한 조언을 듣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입에 “우와 천재 아니세요?”란 감탄사를 입에 달고 삽니다. 언젠가 은혜를 갚겠단 계획도 있는데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에게 은혜를 갚을 수도 있겠습니다. 반드시 현장에 가야 하는 만큼 늘 날씨를 살피고 (날씨는 좋아도 ‘일’ 안 좋아도 ‘일’입니다) 매일 뉴스 속보에 놀라며 삽니다. 어느 현장이든 안전하고 신속하게 데려다주시는 수송부 형님과 함께 차 안에서 “비야 멈춰라”를 빈 적도, 반대로 “빗방울아 더 세차게 내려라”를 빈 적도 있습니다. 취재에 오랜 기간이 걸리는 산불과 대형 사고만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제 사물함에는 언제나 여분의 옷과 양말이 준비돼있습니다. 주변 지인들은 큼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 이거 수빈이는 안 가?”하며 놀리고, 저는 “본인 일 아니라고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하며 질색을 합니다. 하지만 사실 현장에 가는 건 좋습니다. 남의 일로, 글자로 보고 넘겼을 일을 직접 들여다본다는 것은 기록과 취재 그 이상의 가슴 벅참, 타인을 타인으로 만들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각종 미디어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저는 여전히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 한 장’의 힘을 믿습니다. 물론 갑작스레 잘 모르는 채로 혹은 자신 없는 취재를 맡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한 번 놓친 장면을 되 담을 수가 없는 직업이다 보니 피고인의 검찰 출석 같은, 짧은 시간 내에 한 장을 잡아내야 하는 현장을 가면 신경이 곤두섭니다. 타사 선배들에게 연신 양해를 구하며 괜찮아 보이는 자리를 잡고 연사를 남발합니다. 스튜디오에서 피사체에 맞춰 조명을 배치하고 카메라를 노트북에 연결해 노출을 맞추고 완성된 한 장만 만들면 되는, 별로 다 싶으면 될 때까지 다시 찍을 기회가 있는 환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보니 한동안은 계속 현장에서 어리벙벙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 나 아는 게 없는데 어떡하지’하는 취재를 맡게 됐을 땐 사진기자라면 누구나 있는 ‘제2의 동기’ 사진 기자 친구들에게 재빠르게 SOS를 칩니다. 오늘 ‘ㅇㅇ현장 가는 사람?’, ‘ㅇㅇ해 본 사람?’, ‘ㅇㅇ 스케치하기 좋은 장소 아는 사람?’ 떨림으로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저를 늘 동기들이 구원해냅니다. 회사 동기들과도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저만큼 동기 복이 넘치는 기자도 흔하지 않을 겁니다. 하루 평균 2~3건의 현장을 다녀오면 바짝 긴장했던 막내의 하루도 슬슬 마무리됩니다. 편집부에서 선택돼 넘어오는 사진의 설명을 넘기고, 독자들이 관심 있을 법한 현장은 온라인 기사로도 작성하고, 카메라와 메모리 카드를 점검하고, 오늘 다녀온 취재 현장을 정리해 기록합니다. 1년 정도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 일의 반복성이 파악된다고 하는데, 제가 2년 이곳저곳 누빈 결과 아직도 처음 가보는 현장이 가득하고 사진 취재는 늘 새롭고 어렵고 고민되고 짜릿합니다. 곧 들어올 당신의 기자 생활은 어떠할지 괜스레 저도 설레는 상상을 하며 하루 마무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