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전형 마감 전날, 행여나 오탈자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어색한 문장을 붙들고 이리저리 바꿔봤습니다. 수정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날이 바뀌어 새벽 3시였습니다. 머리가 후끈했습니다. 뻑뻑한 눈을 비비면서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은데’라며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처음에는 3000자 분량의 백지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억지로 경험을 쥐어짜 쓰려고 하니 글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결국 나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경험에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극적인 계기나, 내세울 만한 뚜렷한 사명감은 없었습니다. 대신 ‘뭔가를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선명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과 관련된 경험을 찾아 엮어나갔습니다.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을 녹여내려고 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대학생 때 읽은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 대해 썼습니다. 지역에서 생활하며 바라본 5일장 풍경과 아이들이 개울가에 물장구치는 모습을 자기소개서에 담았습니다. 과장하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필기시험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했습니다. 낯선 논제를 10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논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놓기로 했습니다. 평소 스터디를 하면서 매주 두 편의 글을 쌓아나갔습니다. 글이 20편 정도 쌓이자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시험장에서는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와 미디어 자본’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 표기의 적절성’ 두 논제가 나왔습니다. 생소한 논제였던 터라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지금까지 써왔던 글 3~4개에서 논리와 사례를 뽑아내고 즉석에서 떠올린 생각을 버무려 글을 완성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실무전형에 포함된 르포 기사작성은 불확실성이 높은 관문이었습니다. 어떤 주제가 나올지 예측도 어렵고, 방향을 잡아도 취재가 잘 되리란 보장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소재를 쭉 훑어봤습니다. 같이 시험을 준비한 동료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시험장에서는 ‘코로나19 이후의 일상’이라는 주제가 나왔습니다. 코로나로 노인정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을 썼습니다. 취재원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말을 걸다보니 쓸 수 있는 멘트들이 조금씩 모였습니다. 정해진 취재 마감 시간보다 30분쯤 미리 들어와서 취재 내용을 정리한 것이 유효했습니다.
면접 때는 ‘긍정적 자기암시’가 효과적이었습니다. 7~8명의 면접위원이 내 답변을 평가한다고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주눅 든 모습으로는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평소 긴장을 많이 하는 터라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틈틈이 ‘면접은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알려주는 자리’라고 자기암시를 걸었습니다. 좋은 인상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한결 편했습니다. 실무전형을 마치고 나서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입사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최종면접에서 부풀었던 기대가 가라앉았습니다. 자기소개서에 적은 사실관계를 지적받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머뭇거리다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왜 그렇게밖에 답변하지 못했을까 속이 상해 지인을 붙잡고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어떤 점 덕분에 합격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기소개서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논술, 르포 기사는 ‘나’에 관한 글은 아닙니다. 자기소개서는 내가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 자기소개서 말미에 “경향신문에서 더 넓은 현장을 누비며 타인에게 뻗어 나가는 글을 쓰기를 희망한다”고 적었습니다. 이 말을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제 나름대로 솔직한 심정을 적었습니다. 지원자분들도 자기소개서를 ‘나’를 주제로 한 글쓰기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삶의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내신다면 좋은 결과 얻으실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