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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사적인 정치부 스펙터클

57기 이두리 | 편집국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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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이 직업에 익숙해질까요? 어느덧 3년차가 됐습니다만 하루하루가 ‘우당탕탕’의 연속입니다. 국회의원 이름을 틀리게 받아적는 건 예삿일, 시시각각 변하는 정가 이슈를 따라잡지 못해 애를 먹을뿐더러 바쁘게 움직이는 정치인을 뒤쫓아 뛰다가 발을 헛디디기도 합니다. 활동 반경은 국회의사당으로 한정돼 있는데 뭐가 이리 정신이 없는지요. 어... 어! 어? 하다 보면 마감 시간입니다. 그래도 퇴근길은 언제나 즐거워요. 저는 ‘저니맨’입니다. 벌써 이곳이 네 번째 부서예요. 짧게 짧게 경험했던 이전 부서들과 비교해 보면 정치부 기자의 일상은 어느 정도 루틴이 정해져 있습니다. 아침 여덟 시까지 국회 소통관으로 출근해 각 방송사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올라오는 인터뷰 내용을 체크하고 정당별 아침 회의에 들어갑니다. 사방에서 말言이 쏟아집니다. 유구한 인터넷 중독자인 저의 타자 실력도 여의도의 말 폭포 앞에서는 맥을 못 추더군요. 오타와 생략으로 가득한 워딩을 보충하고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정치인들의 SNS와 당 논평을 훑다 보면 금세 정오가 가까워집니다. 정치부 기자답게 점심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정치인과 오찬을 하며 취재의 자양분이 되는 테이블 토크를 하는 것이지요. 저는 혼밥을 더 자주 하긴 해요. 오후에는 정치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현안에 대한 코멘트를 듣거나, 상임위 회의를 챙기거나, 백브리핑을 듣기 위해 회의장 앞에서 대기합니다. 바닥에 구부정하게 앉아서 요주의 정치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복도를 지나가는 의원들이 “아이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어떡해” 하면서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곤 합니다. 흰 바지는 입지 않는 것이 좋아요. 오랫동안 기다려 만난 정치인의 입에서 뻔한 이야기가 나오면 김이 빠지는 동시에 안심하고, 폭탄 발언이 나오면 도파민이 돌면서도 암담해지죠.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는 건 퇴근이 늦춰진다는 의미이니까요. 작년에는 스포츠부에 있었는데요, 정치부로 발령받았을 때 한 선배가 “스포츠는 경기 시간이라도 정해져 있지만 정치는 아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셨습니다. 정확한 통찰이었어요. 정치인들은 생각보다 일을 많이 하고 심심찮게 돌발 행동도 하거든요. 가끔씩 공식 일정뿐 아니라 국회 밖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을 살펴야 할 때도 있고요. 그래도 지금까지 저는 8 to 6 근무시간에서 벗어난 적이 많이 없습니다. 정치부가 스포츠부와는 극과 극을 달리는 부서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땐 오전에는 재택으로 전날 경기에 대한 후속 기사를 쓰고, 오후 서너시쯤 집을 나서서 저녁 경기를 챙기고, 경기 상보와 인터뷰 기사를 쓴 뒤 밤 11시쯤 귀가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경기장을 오가야 해서 활동 범위도 지금보다 훨씬 넓고 근무시간도 길었지만 혼자 움직이다 보니 지금보다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던 것 같네요.

부서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제가 부서를 자주 옮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어쩌면 그 전까지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을 해야 하니까요. 괴로운 적응 기간을 거치고 나면 그만큼 나의 세계관과 시야가 넓어졌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어요. 다 똑같아 보였던 정치인들이 개별 인물로 인식될 때의 쾌감, 밀물처럼 밀려드는 SNS 메시지에서 덜 중요한 문구와 파격적인 문구를 가려낼 수 있게 됐을 때의 성취감. 퇴근 후엔 정치인들과의 만찬에 참석해 추가 취재를 하거나 타사 정치 기사들을 훑으며 현안 공부를 하면 좋겠지만 저는 농구나 축구 경기 중계를 봅니다. 여전히 제 안에는 일말의 스포츠 기자 DNA가 남아 있는 탓이죠. 이전 부서에서의 경험은 부서를 옮긴다고 무 썰 듯이 잘려나가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누적되거든요. 다음 부서에서는 퇴근 후 정치 콘텐츠를 뒤적거릴지도 모르겠네요. 미련 잔뜩 남은 전 애인처럼. 내일에 대한 걱정을 묻어둔 채 저녁을 즐기다가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 헐레벌떡 나가서 익숙한 출근길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또 국회 소통관입니다. 실제로 저는 오전 여덟시 소통관에 들어서면서 매일 이 생각을 합니다. “또 왔군.” 우당탕탕 새 아침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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