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씨 혹시 정치부 가는 게 너무 싫지는 않지?”
21대 대통령선거를 일주일쯤 남긴 어느 날 수화기 너머로 캡이 물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정치부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보내주시면 가죠”라고 무덤덤하게 답했지만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 저는 사건팀 기자에서 야당팀 기자가 됐습니다.
1년 반가량 사건팀에 있으면서 이제는 기자 생활에 조금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서가 바뀌니 다시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정치부에 온 첫 한 달은 말 그대로 ‘우당탕탕’이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워딩을 잘못 치기도 하고, 의원들의 이름을 잘못 외워 제멋대로 개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 페북을 들여다보다 몇 번이나 지하철을 잘못 내려 허둥대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정치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전 8시30분 아침 회의에 늦지 않기 위해 오전 6시쯤 5분 단위로 맞춰둔 알람을 간신히 끄고 몸을 일으킵니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을 때쯤이면 카톡 메시지가 정신없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아침 발제 전에 타사 보도와 정치인 페이스북, 라디오 등을 놓치지 않고 체크해 팀방에 공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침 회의가 시작하면 ‘말진’의 하루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정치인들의 말을 받아치느라 귀와 손가락은 쉴 틈이 없습니다. ‘폭탄 발언’이 나오면 실시간으로 속보를 쓰기도 합니다. 의원들이 ‘마라톤 회의’를 할 때면 본청 바닥에 5시간씩 앉아 ‘아이고’ 소리를 내며 허리를 두들기기도 합니다.
전쟁 같은 오전을 보내면 의원들과의 오찬이 기다립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의원들에게 무엇을 질문할지 고민하고, 의원들이 한 말을 기억하느라 밥을 먹는 입보다는 머리가 바쁩니다. 정치부에 오기 전에는 ‘어떻게 매일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지?’라고 생각했는데 정치부 5개월 차인 제 캘린더는 점심 약속으로 빼곡해졌습니다.
3년 차 기자이자 정치부 기자 5개월 차인 요즘, 입사 이후 어느 때보다 고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과 어느 정도로 친밀하게 지내야 하고 어느 정도로 거리를 두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내 전화를 받지 않는 의원들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지 등 ‘정치부 초보’로서 고민에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기자로서 잘하는 것은 무엇일지, 2개의 성격이 다른 부서를 거친 지금 나는 어떤 일과 잘 맞는지도 아직은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부서이든 나름의 의미와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부 기자 시절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는 보람이나 다양한 주제를 다뤄볼 수 있는 재미가 사라진 거 같아 아쉬울 때도 있지만 정치부는 의원들의 발언과 행보의 의미를 분석하고 해석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즐기는 자는 못 이긴다’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어느 부서에서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재미를 찾아가고 일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의미와 재미를 찾아가는 길에 좋은 선후배들이 함께했기에 ‘우당탕탕’ 굴러가는 하루하루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최종면접 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는 질문에 “동료들에게 그늘을 내줄 수 있는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경향신문에 입사하실 후배님들이 의미와 재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저도 좋은 동료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