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준비하면서도 편집기자가 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편집기자를 소개하는 가장 흔한 표현은 ‘최초의 독자이자 최후의 기자’입니다. 기사에 제목을 붙이고, 내용을 잘라내고, 사진을 고르고, 지면 레이아웃을 짜는 일을 합니다. 경향신문 공고가 나던 날, 저는 다른 언론사에서 인턴 편집기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1년 정도 취재기자로 시험을 보러 다니던 중, 그냥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지원했었죠. 그렇게 보낸 반년은 편집을 사랑하게 되기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원고지 십수 매의 기사를 한 단어에 온전히 실어내기 위해 수없이 표현을 정제하고 응축하는 과정도, 매일매일 칼날 끝을 걷는 것 같은 강판 시간도 마냥 좋았습니다.
코로나19 거리 두기가 엄격하던 시절 수험 생활을 시작하고 끝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인데도 스트레스성 이명이 생기고 무기력해지더군요. 그럴 땐 ‘언젠가 되겠지’라는 다소 나이브한 생각으로 되도록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논작은 1년 반 동안 스터디로만 대비했습니다. 전문적인 조언을 못 받는 대신 충분히 써보자는 생각으로 수요일과 토요일마다 논술과 작문을 각각 하나씩 쓰고 다음 날 퇴고하는 스터디 모임을 운영했어요.
고민 없이 편집기자로 지원한 만큼 자기소개서와 필기시험에서 가장 공들인 것은 제목이었습니다. ‘나 같아도 궁금해서 한 번 더 보겠다’ 싶게 쓰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고 기억해요. 실무 시험 주제는 ‘코로나19로 변화한 사회상’이었습니다. 현금이 사라지고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서 어르신들이 불편을 겪는단 걸 주제로 삼았습니다. 베테랑 언시생처럼 평소 구상하던 기사를 쓴 건 아니었어요. 평일 낮 시간에 은행, 시장, 버스, 약국, 음식점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르신들 얘기를 많이 듣게 돼 야마로 삼았습니다. 사진도 직접 세 장을 찍어 첨부해야 했는데, 약국 앞에서 현금을 손에 쥐고 기다리는 할머니 모습이 마침 휴대폰 카메라 앵글에 걸려주어 고마웠습니다.
실무면접은 주로 편집에 가진 애정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았던 제목과 뿌듯했던 순간들, 어떤 점 때문에 편집기자가 되고 싶다고 느꼈는지를 얘기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로는 ‘경향은 왜 7단 편집을 고수하는지, 6단 면과 7단 면을 나눈 기준은 무엇인지’를 역으로 질문했습니다. 편집기자는 주로 경력직으로 충원돼서 면접을 보는 것도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에 떨어지더라도 궁금증은 풀고 가자고 생각했어요. 최종 면접에서도 특별히 경향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강조하지는 않았습니다. 막연히 일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지만, 다른 많은 지원자들처럼 경향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거나 재수도 불사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나는 성격이라 되도록 솔직하게 답변했습니다.
덤덤한 척 채용 과정을 돌아봤지만, 사실은 실수투성이에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최종까지 가본 적도 많지 않고 인턴과 병행하는 건 처음이어서 모든 걸음이 첫걸음 같았어요. 지원서에는 경력란을 빠트렸고, 필기는 복기도 못 할 만큼 급하게 쓴 데다가 실무 시험 날에는 지각까지 했습니다. 시험 도중엔 시장에서 지갑을 잃어버려 면접비를 차비로 탕진하기도 했어요. 최종 면접 이틀 전에는 전국 편집기자 체육대회에 억지로 끌려 나가서 경향 깃발을 든 선배들을 먼발치에서 보며 떨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날 얻은 근육통으로 며칠을 끙끙 앓다가 면접이 끝난 뒤에야 근처 카페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더랬죠. 합격운이 꼭 모든 조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찾아오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1년은 경향신문을 제 마음대로 해석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아요. ‘경향은 이런 사람을 원할 것이다’를 추측해서 그 이미지에 맞게 본인을 끼워 맞춰 포장하거나, 전형적인 기자다움을 강조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사람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구나’ 싶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경향은 ‘모두 좋은 사람들 뿐이니, 어쩌면 나도 이들만큼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입니다. 제 착각을 공고히 해줄 또 한 명의 ‘좋은 사람’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